“뭐가 감사한 건지를 사람들이 너무 몰라요”
LA 다운타운에서 의류도매상을 하는 문순호씨(55)가 며칠전 이야기 끝에 한 말이다. 나이든 싱글들의 연애감정을 다룬 칼럼,‘이 나이에 이런 감정…’(본란 11월3일자)을 읽고 전화해온 독자들 중의 한사람이었는데, 다른 분들이 대개 ‘감정문제’를 얘기한데 반해 그는 ‘감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이 모이면 저마다 남편 흉이에요. 남자가 60이 넘으니 잔소리가 많다, 지저분하다…불평들이 끝이 없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하지요. 그것도 감사한 거라고”
남편과 사별한 지 2년이 채 못되는 문씨의 결혼생활은 객관적으로 볼때 ‘행복한 결혼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가 셋째딸 낳은지 3개월 되었을 때 남편이 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후 18년간 병석에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몇년은 말도 못하고, 대소변도 못 가리는 전신마비 상태였다.
그런 남편에게 그는 지성이었다. 하루 24시간을 동행했다. 아침마다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같이 출근해 가게 안 조그만 마루방에 눕히고는 일하는 틈틈이 보살폈다.
“운전을 하다보면 남편의 몸이 내게로 쓰러져요. 몸을 못 가누니까요. 그러면 나는 핸들이 흔들릴까봐 한쪽 팔로 남편의 무게를 있는 힘을 다해 버텨내며 아슬아슬하게 운전을 하곤 했지요”
지금은 아무도 기대는 사람이 없어서 운전할 때면 홀가분하게 쌩쌩 잘 달리는 데 “하나도 편하지 않고 가슴에 찬바람만 인다”고 그는 말했다.
“아파서라도 옆에 있기만 하면 얼마나 의지가 되는데… 그냥 살아서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게 감사한 거예요”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도 씨를 뿌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노르웨이 속담인데 그 배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탄이 이 세상에 와서 큰 창고를 짓고 그 안에 씨앗들을 가득 저장했다. 미움, 슬픔, 눈물, 절망 등의 씨앗이었다. 사탄이 그 씨앗들로 농사를 짓는 맛은 달콤했다. 어느 마음의 밭에다 뿌려도 무럭무럭 잘 자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독 한 동네에서만은 농사가 안되었다. 아무리 씨앗을 가져가 심어도 도무지 싹이 트지를 않았다. 기쁨이란 이름의 동네였는데 그 동네가 기쁨이 가득한 건 무슨 일에건 감사를 잘하기 때문이었다. 삶의 조건보다는 마음의 토양에 따라 감사와 기쁨, 그리고 행복이 가능하다는 교훈이다.
소비가 미덕인 현대 물질문명 사회는 감사를 배우기 어려운 환경이다. ‘가진 것’ 보다는 ‘못 가진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문명이다. TV를 켜도, 거리의 빌보드를 보아도 메시지는 하나다. “이런 좋은 게 있으니 어서 가지세요. 그러면 행복해질테니”라는 유혹이다.
감사는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뒤쫓느라 밖으로 향하던 눈을 안으로 돌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때 생기는 마음이다. 같은 반잔의 물이라도 반이나 ‘없음’에 초점을 맞추면 불평과 불행의 조건이 되지만, 반이나 ‘있음’을 볼줄 아는 사람에게는 감사와 기쁨의 조건이 된다.
‘감사해야 할 것들’이란 재미있는 시가 있다. 입에서 불평이 터져나오려는 순간 떠올리면 미소가 떠오를 시다. 간추려 옮기면 이렇다.
“파티 끝나고 치워야할게 잔뜩…그건 친구들이 많다는 뜻/또 세금인가…그건 내가 실직하지 않았다는 뜻/옷이 몸에 너무 끼어서…그건 먹을 게 충분하다는 뜻/주차장 끄트머리밖에 차 댈 자리가 없어…그건 내가 걸을 능력이 있다는 뜻/세탁해서 다림질할 게 산더미…그건 옷이 많다는 뜻/새벽부터 울려대는 자명종…그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뜻”
감사의 계절에 우리의 마음의 밭을 들여다보자. 슬픔과 절망의 씨앗을 들고 사탄이 좋아할 밭이라면 곤란하지 않은가. 마음의 토양을 바꾸면 감사는 언제나 가능하다. 감사는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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