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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훈 편집위원>
조셉 퓰리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의 하나였다. 1917년 제정된 퓰리처상은 상금은 3,000달러 밖에 안 되지만 언론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
유태계로 헝가리에서 태어난 퓰리처의 원래 꿈은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눈이 나쁘고 체구가 왜소하다는 이유로 입대가 거부되자 미국으로 이민 와 남북 전쟁 때 군인으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나자 세인트루이스에서 독일계 이민자를 위한 커뮤니티 신문에서 일하며 언론과 인연을 맺었다. 메인스트림 신문을 사들여 재미를 보자 야심을 품고 뉴욕으로 진출, 별 볼 일 없던 뉴욕 월드지를 인수, 부수를 1만5,000에서 15만부로 늘리는 수완을 발휘한다.
1면에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을 큼지막하게 쓰고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뽑은 것, 만평과 소설을 싣고 스포츠와 여성 섹션을 마련한 것 등이 모두 그가 시작한 것이다. 신문 값을 대폭 내려 구독료에 의존하던 신문 운영을 광고료 중심으로 바꾼 것도 그다. “독자가 많아야 광고를 더 받을 수 있고 광고가 많아야 수입이 늘어나며 돈이 있어야 신문의 독립도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보다 센세이셔널한 기사 위주의‘옐로우 저널리즘’의 창시자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898년 쿠바 아바나 항에서 미 전함 메인호가 폭발하자 그는 라이벌 허스트와 짝짜꿍이 돼 조작된 증거를 사실처럼 보도해가며 스페인에 선전포고할 것을 선동했다. 전쟁보다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뉴스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전쟁은 일어났고 신문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퓰리처와 허스트가 언론 재벌이 되는 데는 스페인 전쟁이 한 몫을 했다.
전쟁이 최고 뉴스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권위 있는 퓨 언론 연구소가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의 언론관을 조사해 본 결과 그 이전과 큰 변화가 있었다는 소식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전에 없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가장 관심 있는 뉴스가 건강과 가십 등 소프트한 것에서 전쟁과 테러 등 하드 뉴스로 옮겨졌다. 신문을 열심히 보는 사람 수도 테러 전에 비해 3배나 늘어났다. 이중에는 신문이라면 쳐다보지도 않던 젊은 층이 상당수다. LA 한인 사회에도 전보다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는 사람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
이런 현상이 얼마나 지속될 지를 놓고는 “걸프전 때도 그랬다.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신중론과 테러를 냉전과 비교하며 수십년 간 계속된 냉전 기간 동안 신문 구독률이 높았던 점을 들어 이런 추세가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란 낙관론이 대립하고 있다. 누구 말이 맞는 지는 모르지만 요즘 언론이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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