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대부분의 이민가정에서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따금씩 손님초대를 하는 것은 평소보다 화려하게 상을 차려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웃고 떠들다 보면 몸의 고단함을 접고도 남을 만큼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서 며칠씩 출렁이며 삶에 생기를 주는 기쁨 혹은 즐거움이다.
손님초대를 하며 또 하나 내가 즐기는 것은 청소이다. 먼지 털고 쓸고 닦는 평상시의 청소가 근육으로 하는 청소라면 손님을 의식한 청소는 눈으로 하는 청소이다. 너무 익숙해서 느낌도 없던 구석의 먼지, 벽면의 얼룩, 비뚤어진 액자, 한켠에 쌓여있던 상자들, 단조로운 가구배치…집안 안팎을 제3자의 눈으로 다시 보며 정돈하고, 여기저기 꽃도 꽂고 나면 반짝반짝 새로워진 집과 그로 인한 상쾌함 - 손님초대의 수고로 얻는 큰 보너스이다.
새해맞이는 ‘손님초대’라고 할수 있다. 2002년 1월1일, 1월2일… 그 신선한 시간의 손님들을 맞으려고 보니 삶의 안팍에 왜 그렇게 치우고 바꿔야할 것들이 많이 눈에 띄는지. 새해의 결심이란 먼지 털고, 얼룩 지우고, 가구 배치 새로 하는 마음의 대청소이다.
새해 첫주, 만나는 사람마다 “올해의 새해결심은 무엇인가”를 물어 보았다. 우선 새해결심에 대한 반응이 여러 가지였다. “아, 새해결심! 너무 바빠서 결심하는 것도 잊어버렸네”부터 “요즘 세상에 어떻게 1년을 걸고 결심을 합니까. 그날의 결심이나 그 주의 결심이라면 모를까”라는 반응도 있었다. 뭔가 하기는 해야겠는데 아직 확실히 모르겠다는 한 주부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이 이불호청쯤 된다면 흐르는 물에 설렁설렁 빨아서 바람과 햇빛에 빳빳하게 말렸으면 하는 기분이에요. 살아갈수록 삶이 왜 이렇게 후줄그레해지는지…”
새해결심을 했다는 사람들의 대답을 모아보면 여성들에게서 가장 흔한 결심은 역시 ‘살빼기’. 남성들에게서 흔한 결심은 ‘금연’‘금주/절주’. 남녀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흔한 결심은 운동하기였다. 잘 지켜지면 좋은 일이지만 이런 흔한 결심의 문제점은 “매년 해봤고, 매년 실패했으며, 그래서 올해도 결국은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자타가 모두 안다는 점이다.
금연을 예로 들면 성공률이 혼자 시도할 경우 5%, 금연 전문기관에 의뢰해 시도할 경우도 40%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정서적 불안정이나 우울증, 스트레스 등 니코틴에 의존하게 만드는 근본적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고치려고 하니 기초공사 없이 집을 짓는 격이 되고 만다.
내가 들은 새해결심이 모두 판에 박힌 결심들은 아니었다. 성공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좀 색다른 결심들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다.
“50여년 살아오면서 남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올해는 그들에게 기회 닿는대로 고마움을 표시하며 사랑의 빚을 갚는 해로 삼겠다” “‘바쁘게 살지 말자’가 올해의 결심이다. 바쁘게 살수록 내적으로 공허감만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의 눈치 안보고 살기로 했다.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쓸데없이 시간과 돈,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이제는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살겠다”
양 보다는 질,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 목표달성 보다는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중시하겠다는 삶의 자세들이다. 그만 좀 먹고, 그만 좀 마시고… 자신을 책망하고 벌주는 것같은 결심을 하기 보다는 삶을 푸근하게 끌어 안는 태도들인데 그런 류의 결심으로는 이런 것도 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담배를 끊어 보겠다는 둥, 아내에게 좀 더 친절하게 하여 주겠다는 둥 별별 실행하기 어려운 결심을 곧잘 한다. 거울을 들여다 볼 때나, 사람을 바라다 볼 때나 늘 웃는 낯을 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아마 가능할 것이다”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띄게 하는 수필가 피천득씨의 말이다.
비전없는 결심은 십중팔구 결심으로 끝나고 만다. 내가 이루려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그 그림이 분명하다면 거기에 이르는 과정으로서 결심은 아마도 성사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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