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 52분. 오늘은 조금 일찍 도착했다. 여기는 아이들 학교 뒷문, 나는 차안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3시가 되면 학교 쪽에서 요란한 종소리가 들리고, 곧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러면 나는 차 문을 열고 학교 안으로 아이들에게 가야한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 새로 얻은 한국 가요 CD에서 마침 어릴 적 듣던 노랫말이 나온다. 여기가 마치 한국인 양 한껏 노랫말에 취해 본다. 이 시간은, 이 차 안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다. 내가 한국이라고 생각하면 한국인 것이다. 지금 나는 한국에서 내 차 안에 앉아 있다..............
3시가 가까워 오니 근처에 차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학교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들어가려다 말고 서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사람, 인도사람, 중국사람...내가 차에서 내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들 수 가 없어서 참 힘들었다. 차 문을 열고 나가 저 사람들 틈에 끼어 아이들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었다. 서툰 영어도 그 이유 중 하나였지만, 뭔지 모르는 불안감과 무서움, 어색함, 쑥스러움....아무도 말을 걸어 주지 않는 그 틈에서 ‘안 끼워 줘도 아쉬운 거 없어. 날 무시하려 든다면 내가 먼저 무시해 줄 꺼야.’ 하며 스스로는 당당하다고 목에 힘주고 다닌 게 한 일년 전쯤 인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어느 히스패닉계 아이를 도와주었는데, 나보다도 더 영어를 못하는 그 아이의 엄마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였다. 좋은 사람 같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 이상 시간을 같이 할 이유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저 사람보다 더 말을 잘 할 수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사람과 사람으로 친할 수 있다면, 누가 먼저 말을 걸 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사람과 사람으로 친할 수 있다면 어느 나라 사람이건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 같은 사람 인 것을...
그리고 나서 며칠 후, 큰 아이와 친한 친구의 엄마라 자주 마주치는, 인상이 무척 차가운 미국 아줌마에게 말을 걸었다. 항상 차분한 노랑머리, 까만 선글라스, 왠지 위압적인 눈매를 가진 사람 이였는데, 그렇게 상냥한 목소리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마침 아이들 반의 파티를 목전에 두고 있어, 반 아이들 컵 케이크를 24개나 구워야했지만, 기분은 한결 뿌듯했다.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담 하나를 없애버렸기에.
미국 아줌마들이나, 한국 아줌마들이나 똑 같다. 친한 사람들끼리 친하고, 서로 걱정도 나누고, 어떤 사람들은 남 얘기하는 것 좋아하는 것까지.
3시. 끝 종소리가 들린다. 차 문을 열고 나가면 여기저기 웃으며 " Hi~" 하고 인사해야지. 많이 좋아 졌지만...하지만, 아직은... 심호흡을 한번 한다. "후유......~"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미국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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