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의 유적 가운데 날개 달린 신상이 사각형 모양의 핸드백을 들고 있듯이 가방의 역사는 유구하다. 중세 왕족이나 귀족들은 작은 가방에 보석이나 돈을 넣고 다녔고 서민들은 가방을 빵, 옷 등 생필품을 가지고 다니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귀부인들의 옷가지가 든 트렁크 짐을 꾸리는 일을 하던 루이 비똥이 1854년 열차 화물칸에 짐을 편리하게 실을 수 있는 ‘평평한 트렁크’를 파리 패션쇼에 선보이면서 현대적 개념의 가방이 등장했고, 보자기 등을 사용하던 한국에서도 1938년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시작으로 뚜껑 달린 가죽가방이 학생들의 떼 놓을 수 없는 ‘친구’가 됐다.
맛난 도시락은 깜박 잊더라도 가방만은 반드시 챙겨 등교해야 하는 게 학생의 처지이다 보니, 무겁고 거추장스러워도 학창시절만큼은 ‘대안 부재론’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등에 메고 다니는 백팩(Backpack)이 너무 무거워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결과가 학술지 ‘스파인’(Spine) 최근호에 발표되면서 ‘대안 모색’ 주장이 무게를 얻고 있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등산 배낭만큼 묵직한 백팩을 견디기엔 무리가 따르며 무심코 방치하면 심장, 폐, 척추를 손상할 수 있다는 섬뜩한 지적이다. "어른이 들어도 만만치 않은 백팩인데 어린 아이들이야 오죽 하겠느냐"는 게 학부모의 걱정이다. 교과서를 2권씩 주어 한 권은 학교에 두고 한 권은 집에 두는 방법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재정악화로 교육구 예산이 삭감될 판에 엄두도 못 낼 아이디어다.
백팩 무게 줄이기는 진정 ‘버거운 싸움’이다. 군대에서 사단 평가 때가 되면 ‘완전 군장’한 채 100km 행군을 한다. 평가 결과는 사단장의 진급과 직접 연관돼 있으므로 좋은 성적을 올리려고 ‘불완전 군장’을 묵인하기도 한다. 모포, 판초우의, 수통, 야전삽 등 밖에 드러나는 장비는 평가단의 눈이 있어 어찌할 수 없지만 배낭 안에 들어가는 속옷 등 소위 관물은 바람넣은 베개로 대체해 무게를 확 줄이곤 한다. 그러나 백팩이 무겁다고 책을 빼고, 사전이나 학용품을 내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덩치 큰 고등학생쯤 되면 백팩이 무거워도 걱정이 덜 되고, 초등학생은 부모 말을 잘 따르니 바퀴 달린 가방을 사주면 한 시름 놓을 수 있겠지만 또래의 차림새에 민감하고 한창 대들 사춘기 중학생들은 고분고분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모두 메고 다니는데 나만 끌고 다니면 창피하다"는 아이들로 답답해하는 부모에게 학술지 ‘스파인’의 내용은 고대하던 ‘원군’이 아닐 수 없다. 무거운 백팩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이 연구결과를 자녀에게 직접 보여주며 설득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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