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 <민경훈 편집위원>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은 학점 잘 주는 교수와 잘 안 주는 교수를 골라 수강 신청을 하던 동료를 한 두 명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굳이 골라 까지는 안 가더라도 학점이 후한 교수가 인기가 좋고 짠 교수가 인기가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애써 공부해 나쁜 학점을 받느니 적당히 해도 좋은 점수를 받고 싶은 것이 대다수 학생들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미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 대학생의 절반이 A학점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버드에 다닐 정도면 머리가 좋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절반이 A학점을 받는 것은 좀 심한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하버드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명문대의 대부분이 이와 비슷하며 다른 대학들도 정도의 차가 있을 뿐 학점을 후하게 주는 것은 일반적 추세로 굳어져 가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60년대 학교 다니다 낙제를 하면 월남전으로 끌려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성적이 나빠도 좋은 점수를 주던 전통이 굳어졌다는 설, 유럽에 비해 교수의 권위가 없어 학생들에게 엄하게 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좋은 것이 좋다’는 나태한 사고방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취업경쟁이 치열해 명문대를 나왔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좋은 학점을 받아야 좋은데 취직이 된다. 엄격하게 학점을 매기는 교수는 ‘제자의 취업 길을 막았다’는 비난을 두고두고 듣게 된다.
학생들의 교수 평가제도 한 요인이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선생이 잘 가르치느냐 못 가르치느냐를 평점을 매기는 데 이것이 인사와 봉급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교수의 인기도는 학점이 후하냐와 정비례한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다. 교수도 인간인 이상 굳이 인심 잃어가며 짜게 점수를 줘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 까닭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거기다 어퍼머티브 액션에 따라 성적이 나빠도 명문대에 입학한 소수계 학생을 엄격히 평가했다가 이들이 낙제라도 하게 되면 ‘소수계를 차별하는 대학’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된다.
이런 저런 이유를 감안하면 학점 인플레가 이만한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 다니는 자녀를 둔 한인 학부모들은 자녀가 ‘올 A’를 받았다고 좋아하기 전 그것이 진정 학생 실력을 제대로 평가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