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말부터 금년 초까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에서는 현대 미술의 두 거장 반 고호와 고갱 특별 전시회가 열렸다. 남쪽의 스튜디오(The Studio of the South)라는 부제가 붙은 이 전시회가 각별했던 것은 두 거장의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 외에도 남쪽의 스튜디오를 정점으로 했던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남쪽의 스튜디오란 고호와 고갱이 1888년 10월부터 12월까지 약 3개월 동안 함께 살면서 그림을 그렸던 프랑스 남부 아를 지방의 작업실을 지칭하는 말이다. 1888년 5월, 고호가 화상이자 재정적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아를 지방에 낡은 집(일명 옐로우 하우스)을 마련하고 제일 먼저 생각해 낸 것이 친구 고갱의 초청이었다. 그 전부터 두 사람은 서신 왕래와 만남을 통해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우정을 나누어 온 사이였다.
그러나 옐로우 하우스에서의 동거는 그들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세계와 방법론을 존중하고자 했지만, 옐로우 하우스는 상이한 두 사람이 자신들의 세계를 고수하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이었다. 고갱은 석달을 채우지 못하고 스튜디오를 떠나고, 고호는 얼마 후 정신병을 일으켜 2년 뒤인 1890년 자살로써 생을 마감한다.
고호와 고갱 중 두 사람의 관계에 더 집착한 사람은 고호였다. 그의 서신에서도, 그림에서도 이 사실은 그대로 드러난다. 고갱의 도착을 기다리며 어린아이처럼 기대와 설렘에 잠못이루는가 하면, 폭발할 것 같은 긴장의 나날 속에서도 그는 고갱이 떠날까봐 노심초사한다. 그는 고갱의 방을 장식할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고갱의 그림을 토대로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두 사람의 그림을 돌아보는 내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관계의 비극성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에는 더 사랑하는 사람, 따라서 더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쪽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간의 사랑은 물론이고, 부모 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등 모든 관계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 어느 한 쪽이, 더 사랑하는 쪽이 늘 지게 돼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고호가 동성연애자였다는 주장도 있으나, 만약 그가 동성연애자였다면 이 관계의 비극성은 더해진다.)
고호의 그림은 오늘날 관계의 비극성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많은 위로와 위안을 준다. 불교에서는 집착을 끊는 것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가르치지만, 나는 자신의 고통을 송두리째 끌어안고 격렬하게 살다간 그의 생애에 더 마음이 간다. 자신의 고통을 끌어안는 일은 결국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나는 적어도 그가 그림에 몰두하는 순간 만큼은 자신과 화해했다고 믿고 싶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삼나무 밭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걸작들은 오히려 고갱이 떠난 뒤에 탄생되었다. 자연의 생명력이 화폭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이 작품들 앞에서 나는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승리를 떠올렸다.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상대방보다도 그러한 상대방에 연연하는 자기 자신을 더 용납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일, 그것을 자기 몫으로 수긍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도록 노력하다 보면 고호가 그랬듯이 우리도 삶과 자연에 대한 찬미를 바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리라고 믿는다.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고통 속에서 더 깊어지고 커질 수 있는 능력이 인간 안에 있기에 살 만 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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