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도 동동주 막걸리가 선 보였다. 신기해서 사다 먹어보니 어린 시절 술도가에서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사오면서 몰래 먹던 그 맛이 아니다. 그 어린 시절에 술지게미 얻어다 검은 무쇠 가마솥에 넣고 사카린 섞어 끓이면 달짝지근하고 새콤한 맛이 났다. 이것을 온 식구가 먹고 취하여 하늘이 돈짝 만하여 지고,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기분 좋아서 웃고 즐거워하던 술 취할 적의 그 때의 그 맛이 아니다.
갓 시집왔을 때는 가난하여 솥 하나, 냄비 하나, 숟가락 둘, 젓가락 둘, 밥그릇 둘, 국그릇 둘, 이불 하나, 베개 하나 이것이 우리 살림살이의 전부였다. 방이라고 해야 둘이서 자면 남는 여분은 없는데, 윗목 반달 상에 살림살이 다 올려놓고 안방 겸 부엌으로 쓸 때이다. 문만 열면 그 밑이 연탄 아궁이라 거기다 밥하고 국 끓이면서 소담스런 미래를 설계를 하며 살고 있었다.
’ㄷ’ 자로 지어진 집의 방 하나에 연탄 아궁이 하나씩 네 가구가 살고 있는 달동네였다. 쌀이 떨어지면 옆방에 가서 꾸어다 먹고 월급 타서 쌀을 갚던 그런 때가 삶은 힘들었지만 사랑과 소망으로 부푼 시기였다. 하루는 남편이 막걸리 받아 오라고 했다. 나는 옆방에서 주전자를 빌려 막걸리를 사왔다. 남편 친구가 놀러 온다더니 오지 않아서 그 술을 못 먹게 되었다.
술 한되면 큰 주전자로 하나 가득이다. 옆방에서 그 주전자를 써야 한다고 되돌려 달라고 했다. 나는 시집 온지 얼마 안되고 그렇게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처지였다. 밥솥에는 밥이 있고, 국냄비에는 국이 있고, 밥그릇과 국그릇에 술을 담기엔 술이 남고, 옆방에서는 재촉하고 나는 안절부절하며 "예 가져가요" 하고 대답하고 그 술 한 되를 그 자리에서 다 먹었다. 그리고 주전자를 가져다 주었다.
이내 네 활개를 뻗고 잠을 잤다. 저녁 때 남편이 들어와서 자는 나를 깨웠다. 기분이 넉넉하고 마음 편하여 눈에 뵈는 것이 없는데 나를 깨우는 남편에게 "왜 깨워." 호통을 쳤다. 남편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는 나를 쳐다보고 어이가 없어 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나고 술 주전자는 없어지고 어처구니없어 깨우기를 그만두고 자게 내버려두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하고 남편을 깨우니 아침을 받으면서 "어제 그 술 가져와 반주하게" 하였다. 이미 다 알면서 묻고 있었다. 나는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옆방에서는 주전자를 달라고 하고 비워 놓은 그릇이 없어 다 먹었는데요" 했다. 남편은 껄껄 웃으면서 "그릇이 없어서 뱃속에 채웠어!" 남편은 그 후부터는 그릇이 없어서 술 한 되 다 먹은 여자라 놀려댄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 때를 추억하면 가만히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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