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년 아침이다. 새 아침이다. 남편과 손자 재현이, 재용이는 아직도 단잠에 빠져 있다. 새해 아침 떡국을 끓이기 위해 살그머니 일어나 전날 저녁 사태와 양지를 고아 만든 떡국 국물냄비의 뚜껑을 열고 기름을 걷어 내고 다시 한번 끓여 놓고 달걀 흰자 노른자를 갈라 지단을 부치고 김은 살짝 구워서 가위로 가늘게 썰어 놓았다. 고기는 예쁘게 손자들이 먹을 수 있는 크기로 썰어 놓고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새 밥도 지어놓았다.
떡국은 봉지를 뜯어서 찬물에 담가 하나하나 흐르는 물에 씻어서 부서지거나 못생긴 떡은 주워 내버리고 예쁜 모양의 것들만을 쇠조리에 건져 담아 물기를 빼고 지퍼 백에 넣어 다시 냉장고에 넣고 맛있는 양념장을 만들었다. 김치는 할아버지 김치, 재현이 재용이 김치(김치 큰 줄기만 씻어서 가늘게 썰어 참기름, 깨소금 조금만 넣어서 조무락조무락하면 끝)를 만들어 놓아도 아직 모두 잠 속에 빠져 있다. 만감이 오간다.
신(申)가 집에 시집온 지 37년째. 더군다나 올해는 내가 태어난 임오년. 그러니 환갑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여자 나이 60에 무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할 틈도 없을 만큼 바쁘기만 하다. 큰며느리가 어제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지만 친정에 할아버님이 계시고 또 온 가족들이 새해 아침 함께 떡국을 먹고 모이는 자리에 아침 일찍 가자면 피곤할 테니 그만 두라고 했고 둘째 아들 내외는 모처럼 둘이서 시간을 가지라고 재현이 재용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딸아이는 시할머니 시외할머니까지 계시는 집에 큰며느리이니 아예 새해인사만으로 끝나며 출가외인이다. 벌써 태어난 첫 외손자 자강이가 첫 돌을 지나 운동화를 신고 뒤뚱거리며 뛰기까지 한다.
며칠 전 딸과 자강이를 데리고 동네 공원엘 갔다. 자강이는 돌다리 위를 잘도 걷는데 꽃배나무의 하얀 꽃잎이 점점점 휘날리는 그 모습에서 왜 나는 대학 졸업여행에서 보았던 해인사 입구에 줄줄이 서서 흩날리던 벗나무의 연분홍 꽃잎을 생각했을까. 이래서 육신은 늙지만 마음만은 열일곱이라는 것인지.
할아버지 재현이 재용이랑 아침 떡국을 먹고 또 큰아들 내외 작은 아들 내외의 떡국상을 준비해 놓았다. 두 아들 내외가 새해 선물을 안고 도착하고… 산달이 가까운 큰며느리는 내 침대에 좀 누워 쉬라 일러놓고… 내 침대는 딸아이나 며느리들이 집에 오면 누워서 쉬라고 언제나 깨끗하고 예쁜 분홍꽃, 연두색꽃 이파리가 있는 이불로 덮여 있다. 내 체온이 내 아이들에게 전해져 네 여자의 체온이 서로 힘을 얻고 용기를 얻고 사랑을 나누어 우리 집안의 밑거름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아이들 모두 챙겨 보내고 남편과 나는 차 한잔을 마시면서 나른한 피로가 젖어오는데… 그래, 이것이다. 바로 사는 것이란, 주어진 내 오늘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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