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교육구 4분의 1 이상이 워싱턴행 취소시켜
애나 버코위츠가 사는 미주리주 세인트 조셉은 테러 현장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테러의 영향은 애나도 비껴가지 못했다. 애나가 속한 교육구가 해마다 워싱턴으로 가던 졸업생 수학여행을 취소해버렸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워싱턴에 가보겠지만 동급생들하고는 못가겠네요”라고 섭섭해하는 애나는 2년전 신이 나서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던 언니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지만 이건 분명히 테러리스트 때문에 못하는 일이예요”
해마다 수학여행차 100만명 가까운 학생들이 찾던 워싱턴은 10대 청소년들에게 공직과 정치, 대통령의 꿈을 길러주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학생들의 워싱턴 여행을 금지시킨 교육구가 전체의 4분의 1이 넘어 워싱턴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공민교육단체는 존폐의 기로에 서게 돼, 이 나라의 수도가 위험한 곳이 아님을 알리는 광고 캠페인까지 등장하게 됐다.
과거 해마다 3만명 가까운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알선해온 ‘클로즈 업’과 ‘워싱턴 워크샵’ 재단들은 올해 여행 올 학생 숫자가 40%나 감소하는 바람에 직원 수를 줄이고 봉급을 삭감했으나 내년에도 이런 일이 계속될 경우 더 존립하기가 어려운 형편에 있다. 지난 30년간 50만명이 넘는 학생들의 워싱턴 여행을 알선해온 ‘클로즈 업’의 척 탬피오 부회장은 “이 일로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인격형성기에 워싱턴을 직접 보고 듣는 체험을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는 다시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입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수십년동안 워싱턴을 찾은 학생들은 연방 상원의원과 악수하고 돌에 새겨진 독립선언서를 읽어봤다. 연방의원중 고교 수학여행차 처음 왔던 워싱턴에 그만 매료됐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고 빌 클린턴 전대통령의 경우 1963년에 워싱턴에 왔다가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한 순간, 자신의 미래가 결정됐다고 했다.
요즘 워싱턴에 온 학생들은 길 모퉁이마다 경찰이 배치됐고 기념관마다 콩크리트 배리케이드가 쳐진 광경을 본다. 샤프런들은 저녁 6시만 되면 싫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호텔로 몰아 넣는다. 그렇지만 워싱턴이 치유되고 있음은 완연하다. 탄저균에 감염됐던 상원 건물에서는 성조기가 휘날리고 국방부 건물도 검은 화흔들을 모두 합판으로 가렸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성조기를 무심히 보았지만 여기선 느낌이 다르네요. 우리나라의 수도인 이곳에선 모두 한마음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클레이튼고교의 멜라니 페리(17)는 친구들과 함께 방금 버스에서 내렸다. 왼편에는 의사당, 오른편에는 대법원, 바로 뒤에는 의회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는 역사의 현장에 온지 이틀만에 이들은 자신들의 미국 시민됨을 교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방법으로 깨닫고 있다.
그런 애국심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은 안전하지도 않고 비즈니스를 하기에도 좋지 않다는 이미지가 가시지 않아 지역 주민들은 골탕을 먹고 있다. 학생 관광객들의 감소로 박물관 입장객이 45%나 줄고 기념품 상점, 호텔들도 파리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이 도시가 안전함을 확신시키기 위해 앤소니 윌리암스 시장이 전국의 교육감들과 로널드 레이건 국립공항 보안책임자를 초청했고 NBC-TV에서 방송되는 ‘웨스트 윙’의 주연 배우 마틴 쉰이 출연하는 텔레비전 광고 캠페인도 시작했다. 국내 학생단체들을 대상으로 백악관 투어도 재개됐고 의사당과 의회도서관도 다시 열렸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애나 버코위츠 같은 학생들이 살고 있는 곳들에까지 전달되기에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