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국립여성미술관, 20세기 북미여성화가 3인전
워싱턴의 국립여성미술관에서는 지금 이 미술관에 딱 들어맞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들의 자리: 에밀리 카, 조지아 오키프, 프리다 칼로’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20세기 미술계의 세 여성 거장을 한데 아우르는 최초의 기획으로, 이미 토론토와 산타페에서 관중 동원 기록을 깨뜨린 바 있다. 여성미술관측도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 것으로 기대해서 통상 5달러이던 입장료를 8달러로 올렸을 정도다.
이번에 출품된 62점의 작품은 미국에선 거의 선보이지 않았던 것들로,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전성기를 맞았던 이들 북미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세계와 삶을 탐구하고 있다. 에밀리 카(1871-1945)는 캐나다, 조지아 오키피(1887-1986)는 미국, 프리다 칼로(1907-1954)는 멕시코에서 각각 활동했다.
다소 의외인 것은 이 전시회의 스타가 조지아 오키프가 아니라 에밀리 카라는 점이다. 오키프의 경우 전시물이 좀 취약해서 눈길을 끌지 못하는 반면, 미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다시피한 에밀리 카는 강렬하고 열정적인 캐나다 열대 우림의 그림들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초현실적인 정물화 등 희귀 작품을 포함한 15점이 출품된 프리다 칼로도 깊이 있는 세계를 내보이고 있다.
이들 세 여성은 자연 및 그를 둘러싼 문화에 대한 열정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에밀리 카의 초기 회화는 자신의 고향인 브리티쉬 컬럼비아의 토착 인디언 마을과 그들의 토템 폴, 신비로운 사물들을 담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오키프의 그림중 가장 시적인 것은 1942년작인 ‘눈덮인 코코펠리’라는 작품이다.
이 전시회는 산타페 칼리지의 미술사학자인 샤린 우달이 7년전 오키프와 카의 공통점에 착안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두 사람의 작품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다룬 것으로, “오키프가 산타페의 알록달록한 언덕과 고지대 사막을 그렸듯이, 카는 캐나다 서해안을 그렸다”고 샤린은 설명한다. 오키프나 카가 미술을 통해서 자신의 국민성을 표출하는데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은 샤린으로 하여금 칼로를 같은 전시회에 포함시키도록 만들었다. “칼로는 멕시코적인 것을 표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멕시코의 정수, 뿌리와 정신 같은 것들을 말입니다”
사실 칼로야말로 멕시코 복합문화의 표본과도 같다. 어머니는 절반은 인디언, 절반은 스페인인이었다. 칼로는 멕시코의 저명한 벽화가인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1910-1920년대의 멕시코 좌익혁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우달의 연구는 최근 출간된 책 ‘카, 오키피, 칼로: 그들의 자리’(예일대 출판부)와 이 순회전시회로 결실을 맺었다. 전시회는 책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즉, ‘자연’ ‘문화’ ‘공적인 자아’라는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한 작가의 작품을 단독으로 감상하거나 연대순으로 보는데 익숙한 관람객이라면 작가간의 공통점을 강조한 이 전시회는 불편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카의 ‘서쪽 삼림’(1931)에 매혹되어 이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오키프의 자연에 근거한 그림을 만나게 되는 식이다.
‘문화’ 섹션으로 발을 옮기면 카의 ‘큰 갈가마귀’(1931)을 보게 된다. 초기작과 같은 주제, 특히 토템을 다루고 있지만. 모더니즘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보여주는 성숙한 작품이다. 후기작 중 일부는 마스든 하틀리나 독일 표현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관객들은 모두 이 번 전시회가 그녀 작품 전체의 회고전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캐나다 밖에서는 그런 회고전이 열린 적이 없다.
오키프와 칼로는 둘 다 나이가 훨씬 많은 유명한 예술가와 결혼해서 명성을 쌓는데 도움을 받았다. 그렇지 못했던 카는 죽기 10년 전에야 겨우 주목을 받았는데, 이는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린 캐나다 화가들의 전시회 덕분이었다. 그녀의 말은 오키프와 흡사하게 들린다. “나는 사람들이 내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그림을 싫어하지요.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내가 느낀 그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세 여성이 이번 전시회를 봤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우달은 이렇게 말했다. “오키프는 싫어했을 겁니다. 공동전시회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칼로는 이런 일에 신경 쓰기엔 너무 아플 것 같구요. 카는 이런 전설적인 대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갖는다는 것에 흥분했을 것 같습니다. 자기도 그런 대가가 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요”
이 전시회는 오는 5월 12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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