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중반 스페인원정대 원주민 학살 마야유적 파괴
유카탄이라는 명칭은 스페인 원정군이 3척의 배를 타고 원주민 노예를 찾기 위해 인구 바하마 제도 주변을 항해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해안을 발견해 오늘의 유카탄에 상륙해 원주민에게 지역 이름을 물은 데서 비롯됐다. 말이 통하지 않는 원주민은 ‘당신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뜻인 테테탄(tetetan)이라고 답한 것이 와전돼 유카탄이 되었다고 한다. 스페인의 유카탄 정복은 20년이 걸려 1547년에 이루어질 정도로 원주민의 저항이 완강했다. 이어 종교재판으로 수많은 원주민들이 교수형에 처해졌고 1552년 란다 신부에 의해 마야문명의 유적지는 우상파괴의 명분으로 부서졌으며 상형문자로 기록된 책 3만권이 잿더미로 변했다. 그로부터 3백년이 지난 1847년 마야의 후손들은 드디어 계급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노예로 부린 백인 상전들에게 총을 겨누며 저항했다. 마야후손의 독특한 지역주의의 분리감정이 유카탄을 하나의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인들이 유카탄에 도착한 시기는 구미 열강들이 원료 공급지와 제품을 팔기 위한 시장확보를 위해 마지막 식민지 쟁탈전을 뜨겁게 벌이던 때로 뱃길을 이용한 인구이동 및 원료와 상품을 선적한 무역선들이 많아 에네켄의 수요는 증가한 반면 유카탄은 농노의 수는 줄어든 상태였다. 한때 에네켄으로 세계시장을 독점했던 유카탄은 마야 유적지와 인근의 칸쿤 등을 품으로 한 관광지로 탈바꿈되었고 대대수의 에네켄 농장은 폐허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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