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사태는 단기적으로 보면 테러 전쟁의 시발점이지만 훗날 팍스 아메리카나의 새로운 씨가 뿌려진 시점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냉전종결과 함께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극한 미국은 지난 1월2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통해 해외 여론쯤 안중에도 없는 독선적 위엄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부시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선전포고를 연상시키는 강한 어조로 북한, 이라크와 이란을 ‘악의 축’으로 단정, 거명된 ‘깡패국가’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당사국들 뿐 아니라 유럽의 우방국들에게까지 커다란 충격을 던져주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외무부가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비판한 사실은 특히 주목할 만 하다.
최근 미국은 이라크를 겨냥한 확전론, 쿠바에 구류된 알카에다 포로들의 대우 등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와 계속 마찰을 빚고 있다. 미국이 유럽과 우방 아랍국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이 유아독존식으로 테러전을 수행하고 이란의 민간정부와 한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등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완전히 무시한 외교정책을 벌이자 유럽은 이란 외교관을 초청, 미국과 대치되는 외교를 추진하는 등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심지어 일부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 불균형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언제든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은 주변국의 시기와 견제를 사는 법이지만 미국 스스로가 이를 부추기는 상황은 우려가 된다. 오늘날의 미국은 여러 면에서 고대 아테네를 연상케한다. 민주적인 정치제도와 찬란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던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는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고 혈통보다 능력을 인정하는 정신이 보편화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미국과 유사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처럼 아테네는 페르시아전쟁에서 그리스를 페르시아의 위협에서 구조해준 일등공신으로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었다.
고대 문명의 꽃 아테네가 펠로포네시아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배하면서 몰락한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으나 강대국의 오만으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신임을 잃어버린 것이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에 대항한 도시국가들이 형성한 델로스 연맹에서 다른 회원국을 무시하고 연맹을 사실상 아테네 제국으로 전환시켜 그리스의 해방자에서 가장 혐오받는 압박자로 변모했다.
9·11테러 이전에 미국은 유럽을 비롯한 우방국들과 각종 사소한 이슈로 마찰을 빚었으나 테러참사가 발생하자 우방국의 국민들은 반미감정을 잊고 미국에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전세계의 문제인 테러전을 일방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미국은 9·11테러 비극으로 형성됐던 세계국가들의 호의를 다질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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