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에 과연 누가 한국 대통령으로 당선될지, 미국이 과연 21세기에도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이런 문제들을 우리는 넓게는 ‘사회현상,’ 좁게는 ‘정치현상’의 문제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다루는 학자들에게 고역(苦域)은 예측이 어렵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별로 우습지 않은 우스개가 생겼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TV나 신문에 자주 나와서, "다소간의 정책변화는 예상되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식의 하나마나하는 말만하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또는, 말을 하도 애매 모호하게 해서 아무리 들어도 그래서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건지 도대체 결론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후반에 소련의 장래를 두고서 정치학자들간에 일대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 명문대학의 명망 높은 소련 전문가들 상당수가 소련은 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후 소련이 무너졌을 때, 이들 중에는 학자적 양심에 가책을 느껴 대학을 떠난 사람이 꽤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가 있습니다.
요즈음의 화두(話頭)는 단연 미국입니다. 왜 ‘9·11테러’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부시의 강경 정책은 또 다른 화(禍)를 부르지 않을지, 미국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누가 과연 이런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 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대강을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하나는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역사는 흔히 사회현상의 실험실이라고 합니다. 자연과학적인 문제는 실험을 통해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현상은 실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과(因果)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앞으로의 추이와 결과를 그런 대로 사실에 근접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방법들을 가지고 미국 이해의 ‘워밍업’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20년쯤 전에 예일대학의 폴 케네디(Paul Kennedy) 교수가 "강대국의 흥망과 성쇠"라는 역저를 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쉽게 말해서 역사 속의 모든 강대국들처럼 미국도 이제는 분명히 국력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증거들을 제시한 그의 주장은 당연히 커다란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논쟁의 결과는 ‘그래도 미국은 여전히 건재하고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 그럴 것이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케네디 교수의 주장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몰론 그 사람이 한 얘기는 아닙니다. 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가 로마입니다. 로마가 어떻게 쇠퇴했는지 아십니까. 외적으로는 ‘야만족’, 내적으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고의 것’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지금의 기준으로 평가해도 대단한 수준의 법과 정치 체계, 그리고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로마를 무너뜨린 것은 전혀 체계적이지 않은 ‘야만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로마를 괴롭힐 때, 로마가 보복을 하려고 해도 그들에게는 실체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구체성이 없고,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었으며, 무모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 로마는, 마치 어느 곳 하나만 고장나도 시스템 전체가 무력해지는 컴퓨터처럼, 당시로서는 엄청난 ‘체계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체계성이 없는 것의 도전에 약했던 것입니다. 미국을 공격한 그들도 체계성이나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도면밀한 보복이 그들을 주춤거리게는 만들겠지만 모두 없앨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모두 없앴는지를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얘기는 로마 지도자들의 ‘침상회의’와 ‘원형경기장’의 일들입니다. 로마 지도자들은 침대에 눕거나 몸을 비스듬히 뉘인 모습으로 진미(珍味)를 즐기면서 회의를 했습니다. 대단한 풍요와 누구도 감히 덤빌 수 없는 독존(獨尊)이 곧 로마였습니다. 그런가하면, 대중들은 원형경기장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산목숨들의 죽음을 즐겼습니다. 미국의 지도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회의하는지를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만, 대단한 풍요와 누구도 감히 미국에게 덤벼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서 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리 스프링거 쇼’ 같은 류는 어떻습니까. 쇼의 내용과 ‘제리, 제리’하는 방청객들의 외침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 경기장의 군상(群像)을 쉬 떠올리게 해줍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년 전 인기를 끌던 ‘이홍렬쇼’에서 끝날 때면 그 양반이 항상 하던 멘트가 생각납니다: "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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