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젊은이를 찾아 한인 2세들을 자주 만난다. 한인 2세를 만날 때마다 변함 없이 묻는 첫 질문은 "영어로 할까, 한국말로 할까"다. 대부분이 한국말을 알아듣긴 하지만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한다며 영어로 하자고 답한다.
그런데 요즘 "한국말로 해요"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2세들을 유난히 많이 만나고 있다. 가끔씩 어순을 바꿔 우스꽝스럽게 들리긴 해도 한국말로 인터뷰하겠다는 2세들을 만나면 괜히 예뻐 보이고 김치볶음밥 사달라는 2세를 만나면 더없이 즐겁다.
얼마전 한국에 사는 언니에게 ‘넌 좋겠다. 미국 살아서’란 제목으로 이메일이 날아왔다. 내용인즉 신학기 들어 반장 선거에 추천을 받은 초등학생 조카가 자진해서 반장 후보를 포기했단다. 반장하기 싫다고 한 게 어때서 ‘미국 살아 좋겠다’까지 비약됐나 했더니 조카의 포기 이유가 ‘난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잖아’란다.
반장 후보로 5명이 추천됐는데 3명은 미국에서 살다왔고 나머지 하나는 독일에서 태어났다며 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영어발음이 남달라서 같은 반 친구들에게 부러움도 사고 인기가 좋다고 했다.
기죽을까봐 ‘그까짓 반장 안 해도 돼’라고 큰 소리는 쳤어도 생각할수록 화가 치민다는 언니는 올 여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조카 둘을 양옆에 끼고 LA에 와서 방학을 보내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영어 발음 나쁜 게 혀 길이 탓이라며 혓바닥 절개수술을 시키는 한국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니 영어 잘하는 사람이 최고라 생각할 수밖에.
그러고 보니 친하게 지냈던 고교동창생 6명 중에 4명이 미국에서 살거나 살아본 적이 있다. 게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외국인학교 입학 경쟁률이 치열해서 걱정이라는 친구까지 있었다.
그나마 미국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외국인학교 입학자격이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외국인학교라… 한국에 살면서 외국인학교를 다닌다면 한국인으로 클까, 외국인으로 클까.
언젠가 TV에서 한국의 초등학교생 중 상당수가 김치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답하는 걸 본적이 있다. 김치 맛을 모르는 한국아이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제대로 지니며 크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하고 김치 못 먹는 한국인보다 우스꽝스럽게라도 한국말하고 김치볶음밥 좋아하는 한인 2세에게서 ‘희망’을 찾고 싶다.
eunseonh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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