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여성
▶ 밀알상 수상 ‘희생의 아내’이길자씨
세상에는 아직도 이렇게 사는 여성이 있다.
지난 10일 밀알상 시상식에서 ‘희생의 아내’ 상을 수상한 이길자씨(57).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정신지체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40년 험한 세월을 살면서 세자녀 모두 대학공부 시키고 결혼시켜 사회인으로 만든, 한국 전통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희생의 아내요, 어머니다. 그러면서 시집살이까지 되게 했으니 그 설움을 다 어디가서 하소연할까.
10년 연상의 남편 이호빈씨는 사리분별을 못하고 말이 어눌하며 아무 때나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집도 못 찾아오는 중증의 정신장애자. 아주 어린아이의 정신수준이라 때로는 밥도 먹여주고 화장실에도 데려가야 하며 목욕, 이발 일체를 이씨가 해주어야 한다.
누군가 항상 지키고 있어야 하는 탓에 그 오랜 세월동안 외출다운 외출 한번 해보지 못했다는 이씨는 한창 예쁘던 17세때, 그런 남편을 얼굴 한번 못 보고 시집갔다고 회상한다.
“초례청 마당에서 족두리 쓰고 절할 때 살짝 보니까 신랑이 히죽히죽 이상하게 웃지 뭐예요. 첫날부터 얼마나 놀라고 기막히던지 많이 울었어요. 친정이 못 사니 말 한 마디 못했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첫딸 낳고는 발이 묶이고, 아들 둘 낳고는 두손까지 묶여 꼼짝 못하고 울며 살았답니다”
아이들보다는 친정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발목을 잡았다. “여자는 시집가면 시집 울타리 밑에서 죽어야 한다. 힘들다고 뛰쳐 나오면 안돼”
시집은 경기도에서 쌀농사 40섬을 짓던 집이었는데 30세에 과부 된 홀시어머니는 장애아들 장가보내 놓고도 며느리에게 미안해하기는커녕 큰소리 땅땅 치며 고된 시집살이를 시켰다고 한다.
그래도 제일 힘들었던 시절은 그 시절이 아니라 86년 이민온 후의 몇 년간.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 시작하는데 남편은 지키고 있어야 하고, 돈은 없는데 밖에 나가 일할 수도 없어서 막막했던 시절이다.
너무 힘들어서 남편을 양로병원에 맡기고는 식당이며 청소하러 다닌 적도 있으나 남편이 바싹 마르는 모습을 보고 다시 집으로 데려온 후 메디칼과 GR에 의지해 근근히 살아왔다.
뒤돌아보면 아득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저 먹고 살려고 열심히 애쓰다보니 오늘까지 왔다는 이씨는 “다 평온하게 지내온 것만도 그저 감사하다”며 살아온 인생중 “믿음생활 제대로 하는 지금이 제일 좋다”고 환히 웃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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