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이 전쟁을 한다면 어느 나라에 충성할 것이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때나 제기될 법한 이 딜레마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현실성이 없는 허황한 가정에 바탕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는 9일 밤 월드컵 16강 진출의 사활이 걸린 한미전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딜레마를 제시한다. ‘미국과 한국 중 과연 어디를 응원할 것이냐’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을 미국에서 보낸 1.5세 코리안 아메리칸에게 이는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설령 1세라 하더라도 2세 자녀가 있다면 꼭 한번 넘어야 할 고개다.
다행이 이번에도 궁극적인 결단을 피할 수 있는 출구가 마련됐다.
미국이 월드컵 한·미전에 갖는 관심은 마이너리그 야구경기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반면 한국인들이 한·미전에 보이는 관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4천만 국민이 48년 동안 한마음으로 염원해온 16강 진출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기필코 한국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래도 이번 월드컵은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는 올 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김동성 선수가 금메달을 잃은 이후 반미감정이 극도로 달아올라 이번 한미전에도 음침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고조된 반미감정이 미국과의 경기에서 폭발해 불상사로 이어질 우려 때문에 한국 정부가 불안해 할 정도다. 한국 인터넷은 물론 방송에서도 김동성 사건을 상기시키며 이번에는 반드시 설욕해야 한다는 등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니 주한 미대사관의 외교관들이 한국의 승리를 희망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이를 고려할 때 미주 한인은 한국을 사랑하되 ‘한국의 한국인’과는 다른 ‘미국의 한인’으로써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 경기장에 모인 한국인들이야 ‘미제국주의 타도’를 외치겠지만 6,000마일 떨어진 LA에서 잠을 설치는 미국의 한인들은 한국을 응원하면서도 내심 한 부분으로는 아쉬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야구 경기에서도 이치로나 카즈히사 이시이가 잘하면 많은 한인들은 기분을 상해한다. 물론 박찬호가 잘 하면 더더욱 좋은 일이지만, 아시안 선수들이 미국 어린이들의 우상이 된다는 것은 미주 한인으로써는 환영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으로서 반일감정을 제어하기 어렵지만, 미주 한인으로서는 이들이 미국 주류사회에서 일본인이나 한국인으로 구별되기 보다 제일 먼저 아시안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미주 한인 이민사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미주’와 ‘한인’이 함께 반영되는 우리만의 정체성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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