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폭풍처럼 지나가고 있다. 한국팀이 4강까지 올라간 일은 실로 온 나라의 기쁨이요 전 민족의 자랑이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 코리언들 전체가 지구 위에서 어깨를 활짝 펴고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한국교회의 세계선교사역에도 막강한 도움이 될 것을 확신한다. 참으로 시원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월드컵경기가 끝나가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냉정하게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없이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평가대상의 하나로 ‘붉은 악마’ 응원단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난 6월 21일자 한국일보의 뉴스 에세이 ‘붉은 악마 그 이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적지 않다.

’붉은 악마’라는 이름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운동 팀들이 사용하는 사례가 있는데 그걸 애칭정도로 생각하지 뭘 딴지를 거느냐는 핀잔도 있다. 무엇 때문에 축제기분이 최고조에 달한 때에 교계언론들이 그 문제를 들고나서느냐는 시비도 있었다. 스포츠의 언어와 종교의 언어를 분간하지 못한 무식에서 나온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물론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이런 시비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이들도 없지 않다. 심지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신성한 교회성전을 응원 장으로 개방하여 결과적으로 붉은 악마를 응원한 사례도 있었다니 ‘붉은 악마’ 이름 시비는 사뭇 김이 빠지게도 되었다.

그러나 온 세상이 다 옳다고 아우성 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세상 사람이 듣든지 안 듣든 지는 그들의 자유에 속한다. 비록 옳은 것 옳다 하고 아닌 것 아니라 하는 일 때문에 칼을 빼어드는 이가 있다면 목을 잘리면서도 ‘아니오’라고 했던 것이 기독교의 피 어린 순교역사이다. 진리를 말하는 데 있어 어찌 여론을 무서워한다는 말인가.

’붉은 악마’라는 이름을 쓰기로 좀 어떠냐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겠다. 자기 아들이라면 애칭이라는 이유로 악마라 이름짓겠는가?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이름지어 주려 하면서 무엇 때문에 온 민족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붉은 악마’를 예찬한다는 말인가. 어린이들의 장난감 하나를 사도 총이나 칼과 같은 악행의 도구는 극력 피하는 것이 사려 깊은 부모의 태도이거늘 어찌 우리 자손들에게 ‘붉은 악마’라는 이름을 자랑스런 유산으로 남기려 하는가?

미국에도 악마 이름을 사용한 단체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한국의 ‘붉은 악마’ 이름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미국은 워낙 넓고 문화가 다양하여 무슨 경기 팀이 악마라 해도 그 영향력을 걱정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붉은 악마’ 응원단의 경우는 다르다.

’붉은 악마’ 이름은 기독교에서 무어라 하기 이전에 국민교육상의 문제이다. 이제 그 좋지 않은 이름으로 인하여 우리 한민족과 자라나는 세대들이 악이나 악마에 대한 불감증이 크게 늘어가게 되었고 반대로 선량한 국민이 되려는 의욕을 크게 꺾어 놓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게 되었다. 이번 월드 컵 경기에서 민족적 명예, 자존심, 자신감을 얻은 것은 큰 소득이지만 선량하고 자질이 우수한 홍익인간의 이미지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악마를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로 생각하게 되면 평생을 악마와 투쟁했던 예수님의 사역, 특히 십자가가 무효화되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외우는 주기도문이 휴지조각이 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붉은 악마 응원에 동조한다면 그를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것인가.
(이정근 목사/ 유니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