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No! Get away! Tell someone!”
80년대 초 큰아이가 너서리 스쿨에 다닐 때였다. 어느날 방과후 아이를 픽업했더니 아이가 자랑스럽게 그날 배운 것을 암송했다.
“‘노우’ 라고 한다! 도망간다! 누군가에게 말한다! - ‘누군가’는 엄마나 아빠, 혹은 선생님 같은 좋은 사람이에요”
무슨 이야기인가 물어보았더니 성추행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교육 내용이었다. 3단계 행동지침과 아울러 교사들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접촉’과 ‘나쁜 접촉’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어른들이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주는 것은 좋은 접촉이지만 신체의 어떤 부분들을 만지거나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게 껴안는 접촉은 나쁜 것이니 ‘노우’라고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거기에 “낯선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라”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어린이에 대한 성적학대는 당시 한국에서는 개념도 없던 때였다. 3살짜리 딸이 그런 교육을 받는 모습을 보며 나는, 좀 과장하면, 참담했다 - “정말 이상한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었구나”
지난 15일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한 타운하우스 단지에서 실종된 5살짜리 소녀가 다음날 성폭행을 당한 후 목졸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백인 소녀 특유의 해맑은 표정으로 보는 이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를 띄게 하던 순진무구한 아이가 변태 성욕자에게 끌려가, 무참하게 폭행을 당하고, 숨을 끊긴 후, 길바닥에 버려지는 광기의 과정을 상상해보면 누구라도 가슴에서 분노가 끓어오른다.
이번 사건은 유괴 당시 잔디밭에서 같이 놀던 목격자가 6살짜리 한인 소녀여서 한인 부모들에게 특히 ‘남의 일 같지 않은 섬뜩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쉬쉬하며 덮어 왔을 뿐 어린이 성폭행 피해는 한인사회에서도 없지 않았던 것이 또 사실이다.
“짐승 같은 짓 했으면 됐지 아이를 왜 죽이기까지 하느냐”고 격분하는 40대 후반의 한 주부는 10여년전 친지의 어린 딸이 성폭행 당한 모습을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LA 한인타운 아파트 계단에서 놀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부모가 경찰에 신고, 헬리콥터까지 동원된 수색작업으로 10시간만에 아이를 찾기는 했지만 이미 성폭행을 당한 후였다. 아파트 근처에 못 보던 타인종 청년이 서성대는 것을 “새로 이사온 사람인가”하며 무심코 넘긴 것이 아이의 엄마에게는 평생의 한이 되었다.
“아이는 충격으로 혼이 나간 것 같고, 아이 엄마는 쑥·육모초 같은 게 좋다는 말을 듣고 약초의 뜨거운 김을 상처부위에 씌워주며 통곡을 하는데, 가슴이 아파서 볼 수가 없더군요. 얼마 후 그 가족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어요”
어린이 대상 성범죄와 관련, 어려운 점은 ‘안전지대’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18세 미만 어린이들중 소녀는 4명중 한명, 소년은 6명중 한명이 적어도 한번은 성추행 피해를 본다는 통계가 있고 보면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니다.
폭력, 절도등 범죄는 우발지역과 안전한 지역이 대개 구분되지만 어린이 성범죄는 지역, 직업, 학력, 인종을 넘어선다. 중증의 정신질환자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들 변태성욕자는 노숙자부터 기업의 사장까지 각계 각층에 퍼져 있다. 신뢰의 상징이었던 가톨릭의 사제들중 무시 못할 숫자가 상습적 어린이 성추행범이었다는 것은 어린이 성범죄에 관한한 누구도 너무 믿어서는 안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변태성욕은 참회의 기도나 명상으로 치료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했다.
부모로서 고민은 자녀들에게 세상을 무조건 경계의 대상으로 소개할 수도, 그렇다고 마냥 핑크빛으로 소개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심정’이 부모들의 마음이다. 분명한 것은 익사 위험이 있다고 아이를 물 근처에도 못가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물을 즐기되 그 속에 있을 수 있는 위험을 가르치는 기술이 부모에게 필요하다. 건강한 경계심, 판단력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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