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부자 치고 주식에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식이 폭등하면 이들의 얼굴은 희색으로 가득 차지만 주식이 폭락하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된다. 주식 값이 한참 곤두박질칠 때는 신문을 펼 때 ‘펑‘하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라고 어느 경험자가 말한다.
미국 경제가 주식시장 위주로 쏠리다보니 회사 경영자들의 관심 초점도 주식에만 치우치게 된다. 아무리 내다보는 안목이 있고 사원들의 존경을 받는 사장이라 하더라도 회사 주식 값이 떨어지면 무능한 CEO로 낙인찍힌다. 계속 하락하면 사장직을 내놓아야 한다.
사장이 투자자들의 눈치를 살피다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사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든다. 영업실적이 부진한데도 부동산을 팔아 회사가 그 해에 이익을 남긴 것처럼 꾸민다. 포드 자동차의 주식이 80년대 내리막길을 걸었을 때 그런 식으로 가격을 유지했었다.
주식 값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원도 서슴지 않는다. 인정사정 없이 사람을 자른다. 이것이 고용사장 제도의 취약점이다. 장기전망을 세워놓고 회사의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이익, 연말 결산보고서의 숫자만 불리기에 급급해진다. 때문에 모든 것이 단기계획으로 짜여지게 되고 이익 남는 일이라면 비도덕적인 자세도 불사하게 된다.
이렇게 운영하면 회사가 건실해 질 수가 없다. 겉만 번지르르 하고 속은 텅텅 비게 된다.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도 주식 값이 떨어질까 봐 숨기게 되고 마침내는 회계장부를 조작해 이익이 난 것처럼 꾸미게 된다. 그래야 주식 값이 유지되고, 주식 값이 유지되어야 자신의 자리도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고 자기 주식을 처분한 다음 회사를 떠난다. 요즘 신문을 장식하고 있는 월드컴 파산도 이래서 야기된 비극이다.
문제는 월드컴의 비극이 월드컴에 그치지 않고 증권시장으로 불똥이 튀어 주가폭락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점이다. 일반서민, 특히 한인들은 영세상인들에 속하기 때문에 뉴욕 증권시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주가폭락이 매일 보도되고 미국 경제가 어둡다느니 하는 식의 뉴스가 계속되면 소매상도 장사가 안 된다. 또 경제불황이 닥치는 게 아닌가 싶어 소비위축 심리현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천재지변이 있은 것도 아닌데 뉴욕 증권시장의 폭락 때문에 서민 경제까지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 농사를 짓고 공장을 돌리려해도 증권시장이 무너지면 나의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경제원리를 늑대와 사슴에 비유하는 경제학자들이 있다. 사슴이 많으면 늑대가 몰려온다. 늑대가 많아지면 사슴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늑대도 먹이가 없어져 자취를 감추게 된다. 늑대가 안보이면 다시 사슴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사이클도 이와 비슷하다.
주식 값이 바닥을 치면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은 “이때다”하고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투자자들이 몰리면 다시 증시는 살아나고 한참 오르다가는 어느 날 ‘블랙 먼데이’가 닥치고. 10년마다 으레 한번씩 앓는 홍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난 70년대 초에는 석유파동으로 미국 경제가 진통을 앓았고, 80년대에는 레이거노믹스로 허리띠 졸라맸었고, 90년대 초에는 LA 폭동과 경기침체와 부동산 파동이 한꺼번에 일어났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에 또 홍역중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미국 경제다.
증시 폭락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인들도 이민 온지 몇십년이 되었기 때문에 미국 자본주의의 체질에 대해 알만큼 알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치유장치를 지니고 있다. 숨이 넘어가는 것처럼 앓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회복되어 펄펄 뛰는 것이 미국 경제 체질이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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