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가문지!
잔디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누렇게 잔디 잎들이 변해 가더니 그 위를 맨 발로 걸으면 바스락 바스락 소리와 함께 발바닥이 따갑습니다. 아직 때가 아닌데 가을에 나야 할 소리가 깊은 여름에 들리는 것입니다.
잔디뿐만 아니라 모든 초목들이 갈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싱크대에서 나오는 물 한 방울도 버리지 않으시려고 애를 쓰십니다. 그릇을 씻고 그 물을 받아서 화단에 고추밭에 호박에 토란에 고루 고루 뿌려 줍니다. 어찌나 아껴서 주시는지 겉만 적시고 맙니다. 토란잎 끝이 노랗게 변해 가더니 햇빛에 널어 말린 담뱃잎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말라 가는 토란 대를 잘라 삶아서 작대기에 펼쳐 말리고 계십니다.
저는 빈 우유 통들을 모아 놓았다가 작은 구멍을 뚫어 그곳에 물을 담아 올해 심은 작은 관상수 뿌리 옆에다 놓았습니다. 조금씩 물이 나가면서 스며들자 잎사귀에 생기가 도는지 윤기를 냅니다. 물이 귀한 때입니다.
밤 열시 부타 새벽 다섯 시까지, 그것도 집 번호에 맞춰 짝, 홀수로 이틀에 한 번씩 뿌릴 수 있는 물도 뿌릴 수가 없습니다. 식수가 모자랄 지경이라고 하는데 어찌 그 아까운 물을 식물에 줄 수가 있겠습니까.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해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잔디 위를 걸어가며 그 위에 실루엣으로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올라 옵니다.
즉, 마음에 가뭄이 든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물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들입니다.
잔디는 물만 주면 좋겠다지만 그 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의 물을 충만히 뿌려 주지만 그 물을 죽어도 마시지 않겠다는 사람들 입니다. 그들은 죽음의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겉은 파랗습니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마른 잔디에서 들을 수 있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입니다. 그 날카로운 마른 잎에서 나오는 소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따갑게 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나게 합니다.
가뭄은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식물에 물을 줄 때마다 내 마음을 살피게 합니다. 내 마음이 가물지는 않았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안 나는지.
장인식 목사 <아틀라타 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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