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 것은 영토의 크기나 풍부한 천연자원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의 질이다. 그리고 한 민족의 질은 한 시기에 사는 사람들이 노력한다 하여 갑자기 높아지지 않는다.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진 역사와 훌륭한 전통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 유산을 충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좋은 유산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조적인 인물과 위대한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위대한 역사적 유산은 많은 양의 질 좋은 천연자원보다 더 귀하고 위대한 선각자들은 석유나 금 같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소중한 민족적 자원이다.
최근 한국은 지난 6,7월 월드컵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른 뒤 국제적으로 그 위상이 많이 올라갔고, 국내적으로 자긍심이 매우 높아졌다. 축구 경기도 기대이상으로 잘 했지만 특히 전 국민이 질서 정연하게 한 마음으로 응원함으로 역사상 보기 드문 국민통합을 경험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에서 채택한 국호 “대한민국”이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나라”로 일상화되고 태극기가 “우리의 국기”로 친밀하게 되었다.
그 동안 경제도 경이롭게 발전하여 세계에서 12위로, 고교졸업생 대학진학률에는 세계 2위, 문맹률에서는 세계 최하를 자랑하게 되었다. 해방전후와 6.25 전쟁 후의 처참한 상황을 고려하면 실로 눈부신 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열심히 일하고 배우고 이룩하는 데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즉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에는 매우 큰 관심을 기울이고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경쟁이 중요하지 않는 분야, 당장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분야, 혹은 다 같이 이익을 보아야 하는 분야에는 놀랄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도덕, 질서, 정의 등에서는 여전히 후진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청렴도는 조사대상 90개국 가운데서 42위, 아시아에서 다섯 번째로 부패한 나라로 세계의 조소를 받고 있다. 질서와 정의가 확립되지 않아 교통사고 사망자는 일본의 10배나 되고 수많은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며 부패가 만연하여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무질서는 경제성장도 방해하고 학문, 교육, 예술, 스포츠 등의 건강한 발전도 지연시키고 있다.
우리 도덕의 후진성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정직성과 공정성의 결여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도 진실에 대한 정열이 약하며 학계에도 표절이 끊어지지 않으며 예술계에서도 근거 없는 비난이 난무하다. 연고주의가 공정한 평가와 판단을 불가능하게 해서 수많은 약자들을 괴롭힌다. 이 두 가지 결함은 현대 사회에서 치명적이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가장 큰 방해가 되고 있다. 도산의 애끓는 가르침과 그의 솔선수범은 전혀 메아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인이 정직하지 못하게 된 것이 일제의 탄압과 해방 후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생겨난 악습이라고 주장한다.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부정직은 그 이전에도 심각했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 했는가는 1653년 우리나라에 표착하여 상당기간 머물렀던 네덜란드 선원 하멜의 눈에도 뜨일 정도였다. 그는 “조선 사람들은 매우 도둑질을 잘하며 속이거나 거짓말도 잘한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은 신뢰할 수가 없다”고 표류기에 썼다.
민족과 사회가 그렇게 정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치명적인 약점이며 바로 그 때문에 도산의 가르침과 모범은 그 누구의 무엇보다 더 중요한 민족적 자원이다. 우리는 그 자원을 최대한으로 개발하고 이용해야 그가 꿈꾼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정직하지 못하거나 정직하기로 결심하지 아니하고는 아무도 도산을 기릴 자격이 없다.
(손봉호/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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