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미국 국내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9.11 사태 이후 뭐가 변했는지 실감할 것이다. 소지품 검사가 너무 까다로워 불쾌할 때도 있다. 허리띠를 풀라고 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신발을 벗으라고 한다. 한 손으로 허리춤 잡고 신발 벗고 앉아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코미디다. 여기서 통과가 끝난 것이 아니다. 좀 의심스러운 사람은 탑승권을 내밀고 비행기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옆으로 밀려나면서 또 정밀검사를 받는다. “아니, 입구에서 신발까지 벗고 샅샅이 검사 받았는데…”하고 항의 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번에는 더 심하게 뒤진다. 의심되는 승객에 제한되는 검사라지만 지나면서 힐끗 보면 아랍인처럼 생긴 사람들이 많다.
9.11로부터 1년이 지났는데도 미국은 여전히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테러를 방지할 비결이 없을까. 히틀러에게도 이 고민은 있었다. 그가 이웃나라들을 점령하자 레지스탕스의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히틀러는 테러 방지 비결을 모색 끝에 무차별 대량보복하기로 방침을 세 웠다. 그는 체코에서 그 시범을 보 였다.
히틀러의 참모인 하이드리히가 체코의 리디스에서 암살 당하자 사건이 일어난 마을의 15세 이상 남자 전원을 사살하고 주민을 몽땅 수용소로 보냈다. 히틀러의 메시지는 뚜렷했다. “누구든지 테러를 자행하면 그 가족은 물론 이웃 친지들까지 화를 면하지 못하리라.” 이렇게 되면 자체 내에서 테러 후유증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억제되고 테러범 자신도 인간이기 때문에 가족들과 친척들이 입을 피해에 고민하게 된다. 체코에서는 그 후 한동안 테러가 발생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같은 강경한 보복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하지 민주국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전체주의나 독재주의 국가에서는 테러 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보도가 통제되어 테러의 효과가 없다. 북한이나 이라크에서 누가 여객기를 납치하여 고층빌딩을 들이받았다면 어떻게 될까. 바깥 세상에서 알 도리가 없다. 때문에 테러범들도 목숨을 바쳐가며 결행할 만한 일인가를 재고하게 될 것이다.
78년 이탈리아에서 알도모로 수상이 테러범들에게 납치되었었다. 테러범들이 통고한 마감시간에 전국민이 손에 땀을 쥐었다. 마침 테러범들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는 용의자가 한 명 잡혔는데 그는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수사관들은 경찰청장인 칼로델라 치사에게 열쇠를 쥐고 있는 이 용의자를 고문하겠다고 말했다. 이때 칼로델라 치사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이탈리아는 알도모로가 없어도 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고문을 묵인한다면 그것은 이탈리아 민주주의에 대한 장송곡이 될 것이다.” 그는 끝내 피의자에 대한 고문을 허락하지 않았고 알도모로 수상은 결국 테러범들에 의해 잔인하게 처형되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수상을 잃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지켰다.
지금 미국의 민주주의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테러도 단속하고 민주주의의 원칙도 지켜야 한다는데 미국의 고민이 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에서 도난 당한 핵물질 10톤이 알카에다에 의해 뉴욕에 반입되었다는 그릇된 정보로 백악관과 펜타곤에 1급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다. 핵 10톤이면 10만명을 죽이고 70만명에 중상을 입힐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이같은 테러가 일어날 경우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미국 경제에 파탄이 오면 세계 경제가 공황에 빠지게 된다. 미국의 테러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의 공산주의가 몰락하여 세계가 평화시대에 진입하는 줄 알았더니 전혀 예기치 않은 시련이 닥쳤다. 9.11은 21세기의 고민이 무엇이며 어떤 모양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인가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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