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가. 이 문제를 파악하려면 미군의 한국 주둔 배경과 역사를 고찰해야 한다.
주한 미군의 전면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미국 대통령도 있다. 지미 카터다. 당시 한국정부는 현직 대통령인 포드가 틀림없이 당선될 줄 알고 카터의 선거공약에 별로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카터가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자 한국정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카터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한 미군의 필요성에 대해 직접 브리핑했을 정도였다. 이 브리핑은 카터가 안보문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카터의 분노를 샀고 한미정상회담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렸다. 한국측에서 손님을 초대해 놓고 면박을 준 식이 되어버렸다.
박정희는 왜 그토록 주한 미군의 필요성을 강조했을까.
한미방위조약 열 개보다 미군을 한국에 잡아두는 것이 안보에 훨씬 도움된다는 것이 그의 시종일관된 국방정책이었다. 방위조약이 있으면 뭣하나. 의회 동의 얻어 미군을 한국에 파병하려면 보름이 넘게 걸린다. 그 사이 6.25 때처럼 한반도는 전쟁으로 쑥밭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쟁 억제책으로라도 미군이 전방에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미군을 인질로 잡아 전쟁을 억제하고 그 울타리 안에서라야 한국이 경제건설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으며 한국군 혼자 휴전선을 지키려면 국방비가 엄청나 경제 5개년 개혁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박정희는 생각했었다.
한국군의 월남 파병도 미군의 한국 주둔과 맞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존슨 대통령은 주한 미군 2개 사단중 1개 사단을 월남에 이동시키려 했고 한국정부가 결사 반대하자 “그러면 한국군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월남전이 끝나자 닉슨은 괌독트린을 발표, 아시아 국가들이 자신들의 안보를 너무 미국에 의지하면 월남꼴이 된다며 주한 미군 1개 사단을 과감히 철수시켜 버렸다. 한국에는 큰 충격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포드 대통령 시절 판문점에서 인민군 도끼사건으로 미군장교 1명이 숨지고 휴전선이 긴장되어 전쟁위기가 일어나자 카터가 선거공약으로 주한 미군 전면철수를 내걸게 되었다.
그러나 주한 미8군 참모장인 싱글러브 소장이 미군철수는 한반도 전쟁을 유발한다며 카터 정책에 정면 반대했고 이로 인해 그는 소환 당했다. 결국 군내부의 반발이 심해 카터는 주한 미군 전면철수를 실시 못한 채 병력감축 수준에서 선거공약을 실현하는 시늉만 했다.
주한 미군의 필요성이 한국정부에 의해 간청되다시피 강조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항상 “제발 미군이 한국에 머물러 달라”는 저자세 외교를 피할 수 없었고 이같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는 SOFA 협정(한미주둔군 지위협정)이 미군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맺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세상이 바뀌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몰락했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미·소가 손을 잡았으며 동구 공산권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는 등 천지개벽이 이루어졌다.
미국이 6.25전쟁에서 한국을 구해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바뀌었다. 주한 미군은 점령군이 아닌데도 점령군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 이것이 SOFA 협정의 문제점이다. 물론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은 아직도 상존하지만 지금은 동남아의 세력균형을 위해 미군이 전략적으로 한국에 머무는 것이다. 미국측에서 한국을 대등한 파트너로 생각해야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군을 한국에 머물게 해달라”고 한국에 사정해야 한다. 맥아더 사령부식 사고방식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미국이 주한 미군 문제에 있어 새로운 탈바꿈을 하지 않으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데모의 다음 구호는 “주한 미군 철수하라”가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정말 심각해진다. 한국 경제가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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