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한인 노부부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은 미국인 노부부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남편은 서너 걸음 앞서고, 아내는 그 뒤에서 남편을 쫓아가기 바쁘다. 그렇게 뚝 떨어져서 다니니 함께 대화를 하거나 쳐다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다 아내가 남편을 부를라치면 늦게 걷는다 소리치기 일쑤다.
대부분의 미국인 노부부들은 아무리 머리가 하얗게 세고, 몸이 구부정할지라도 나란히 다정하게 손잡고 걷는다. 길거리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면박주거나 소리치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참으로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한인 노부부의 이러한 모습은 몇 가지 문화적 요소와 연관되어 있다. 무엇보다 남녀 유별을 강조하는 전통적 가치의 영향이 크다. 남녀는 유별하며 아내는 항상 남편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가치는 부부간의 자연스런 애정 표현에 걸림돌이 되곤 한다.
또한 일반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의 편견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인기에는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이 없으며, 나이든 부부가 서로간에 따뜻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주책’ 혹은 ‘노망’이란 편견은 아마도 자연스런 노부부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가치와 편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다. 남녀 유별의 개념은 현대사회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남녀의 유별이 뚝 떨어진 걸음걸이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보다는 서로 다른 역할과 책임을 가진 두 배우자가 서로를 돕고 존중함을 의미하지 않을까? 아울러 젊은 사람들의 노부부 애정 표현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곱지 않은 시선은 반드시 바뀌어져야 한다. 노부부의 관계는 젊은 부부의 관계 못지 않게 중요하며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배우자의 자리는 커져간다. 배우자는 나이 들어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며 평생의 가장 오랜 벗으로서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다. 게다가 자식들과의 동거추세가 줄어가는 요즈음 배우자의 중요성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배우자와 지내는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생각해서라도 현재의 한인 노부부간의 태도와 행동은 변화되어야 한다.
얼마전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성공적 노인기 삶의 요건에 대해 얘기했다. 노인기 삶이 성공적이려면, 노인기에도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주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배우자는 노인기 주변인 중에 가장 가깝고 중요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기의 좋은 부부 관계는 성공적 노화와 직결되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노인기에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자. 좋은 부부 관계는 배우자에 대한 배려와 작은 행동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늘부터라도 노부부들은 나란히 다정하게 손잡고 다니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 모습을 보는 젊은 사람들은 흐뭇한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 드릴 것이다.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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