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국민통합21 간 대선공조 파기를 부른 노무현 후보의 발언은 18일 저녁 서울 종로 유세 도중 튀어 나왔다.
이에 앞서 정몽준 대표는 수도권 지역에서 지원유세를 한 뒤 서울 명동에서 노 후보와 합류, 손을 맞잡고 단합을 과시했다. 이때까지는 아무도 공조 파기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종로 유세에서 노 후보는 “후보단일화와 깨끗한 승복, 국정협력을 약속한 정 대표가 내 옆에 있다”고 칭찬한 뒤 “50대 젊은 지도자인 정 대표와 손잡고 새 정치를 해 갈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 공조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일이 터졌다. 시종 웃음 띤 얼굴로 청중을 둘러 보던 노 후보의 시선은 정 대표 지지자가 든 피켓에 멎었다.
노 후보는 “피켓에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고 썼는데 너무 속도를 위반하지 말라”고 농담조로 얘기를 꺼냈다. 노 후보는 이어 “바로 내 옆에는 여성지도자 추미애 의원이 있다”며 “이제 여성의 시대로 여성대통령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폭탄 발언을 했다.
노 후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경선을 끝까지 지켜주고 내 등을 떠받쳐 준 정동영 최고위원도 있는데 어떠냐”고 말했다. 웃고 있던 정 대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노 후보는 “한 사람 밖에 없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있는 게 든든하지 않느냐”며 “서로 경쟁하면 원칙을 지키고 능력을 키우며 국민에 봉사하려 할 것”이라고 의미 부여를 시도했으나 이미 정 대표의 안색은 하얗게 변한 후였다.
노 후보는 그제서야 어색한 분위기를 느낀 듯 “내가 은근히 싸움을 붙였나요”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는 당황한 듯 “여보세요, 아니 여러분”이라고 말까지 더듬으며 “나는 한국에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지 싸움을 붙이려는 게 아니다”고 거듭 해명했지만 이미 정 대표의 얼굴은 굳어질 대로 굳어진 뒤였다.
정 대표는 유세가 끝나자 마자 통합21 당직자들과 을지로의 한 음식점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날 밤 예정했던 동대문 거리유세 일정도 취소했다. 당직자들은 일제히 “노 후보가 어떻게 유세에서 정 대표를 비하할 수 있느냐”며 성토했다.
일부 당직자들은 “노 후보가 여론조사 상 우위인데 선거공조를 유지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정책공조가 안될 걸 알면서 이대로 가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며 지지철회 의사를 분명히 했다. 2시간 여의 격론 끝에 내려진 결론은 결국 공조파기였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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