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들어서야 시작한 가수활동이므로 익은 과일처럼 듣는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샌리엔드로의 낭만파 카페에서 주말이면 무대에 서는 가수 박미지<사진>씨는 "청중들의 가슴을 달래주는 가수가 되고싶다"는 새해 소망을 말했다.
미술을 하던 박씨는 우연한 계기로 가수가 됐다. 20년 전 이민 온 박씨는 뉴욕에 거주하던 시절 96년 라디오 뉴욕이 주최한 ‘주부가요열창’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이때 심사위원을 맡은 조규성씨(과거 보컬 ‘히식스’ 멤버)의 추천으로 가수데뷔의 기회를 가졌다고.
그후 ‘신촌부르스’ 리더인 엄인호씨의 LA 개인 콘서트에 초청가수로 무대에 서는 등 활동반경을 점차 넓혀나갔다. 북가주로 이주한 후에는 낭만파 카페에서 연주하는 마크 양씨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금요일과 토요일마다 노래를 부르게 됐다.
박씨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허스키한 음색에 호소력 깊은 창법으로 파고드는 소리에 빠져든다. 이는 박씨 자신이 인생의 전환기에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당시, 음악으로 도움을 받게된 경험에서 우러나왔기에 가능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박씨. 한영애가 불렀던 ‘누구 없소’를 부를 때는 관객을 사로잡는 짙은 목소리에 매료되고 만다.
이처럼 좋은 발성은 젊은 시절 연극무대에 서면서 익힌 기본기 때문이란다. 9살 때 영화 ‘봄봄’과 11세때 TV 드라마 ‘돌 나르는 사람들’에 출연하는 등 아역배우 출신인 박씨는 25세 때는 맥토극단의 연극 ‘월부로 산 목마’에서 주인공인 ‘미타’역을 맡아 문예회관 대강당에 선 바 있다.
"아직 내 노래가 없어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서운하다"는 박씨. 재즈와 팝, 뽕짝 등 모든 장르를 공부해 "올해 안에 CD를 내고 싶다"고. 자신의 이름 ‘미지’처럼 미지(未知)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박씨는 "노래와 시, 그림으로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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