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왜라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이만 하리라.
위 장 만의 시조에서는 바다의 풍랑에 쫓기고 험한 산길에 시달린 우리네 조상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배와 말을 거부하고 흙에서 작은 희망을 찾으려는 눈초리를 발견합니다.
바다에 실패한 사공이 육지에서도 다시 좌절합니다. 마부라도 되었더라면 그래도 살만 했을 텐데, 그만 그는 말도 팔아버리고 결국 바다도 육지도, 즉 생활수단인 배도 말도 다 포기해 버린 한 인간의 모습을 이 시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발견한 것은 밭을 가는 일이었습니다.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이만 하리라’ 라고, 이 시에서 의지미래형으로 말한 것처럼 아직 농부가 되지 않고 농사에서 안정된 생활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한국인들은 종종 일이 잘 안되면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정 할 일이 없으면 농사나 지어야겠다." 라고 합니다만, 그러나 농사가 어디 말대로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지요. 죽어라고 열심히 땅파고 씨뿌려도 이런저런 정책에 휘둘려 그만 품값도 안나오는 것이 농사꾼의 현실인 것을.
서울에서 교직생활을 하다 전교조 활동으로 교직에서 쫒겨난 후, 고향에서 남의 땅 빌려서 농사를 짓던 후배가 "고향에 내려와 맴 편하게 살라고 했는디, 쌀값도 떨어지고 보리도 심지 못하고, 뭐해 묵고 살아사 쓸란가 눈앞이 캄캄 하당께." "40kg 나락 한가마가 51,000원에 거래된디, 생산가가 47,000원 이거든이라" 하며 하소연하던 그가 고심 끝에 결국 비닐하우스농업을 시작하였고, 밤낮 없이 고생하는 가운데, 고향 마을에 무료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이번에 보면서 무척 안쓰러웠습니다.
그러나 그 후배가 고향에 돌아와 초보 농사꾼이 된 것이 위의 시처럼 생의 모험을 포기한 패배자가 택한 마지막 소극적인 안식처로서 농사를 택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며, 생의 투쟁인 것입니다.
신은 시골을 창조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시골이란 자연에의 적응이고 도시는 그것의 개선이며 극복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 후배가 사는 고향 시골은 곧 신의 마을이 아니겠는지요.
인간의 의지가 투입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마을, 지금은 그 의지로 순수한 신의 마을도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부디 그 신의 마을에서 고생하는 후배의 하우스가 잘되어 밭에서 평화를 따는 농부처럼 그 하우스에서 평화를 따기를 바래 봅니다만, 서울의 한강 물이 얼었을 만큼 강추위라는 한국소식에 하우스농업에서 추위는 곧 온도=돈(기름값)이라고 하던, 그 후배의 근심스런 얼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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