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유치원 다닐 무렵에 살던 우리 집은 도심에선 조금 물러서 있는 기찻길이 집 뒷곁에 뻗어있고 그 뒤론 낮은 산이 둘러서 있었다. 뜰에 작은 우물이 있어서 새벽마다 우물물을 길어올려 마당을 씻어냈다. 때로는 가루 비누를 풀어서 시멘트로 덮인 부분을 긴 막대기가 달린 솔로 박박 밀어대며 닦아내기도 했다.
기름 먹인 고유의 장판지 대신 모노륨 장판이 등장했고 이 모노륨장판도 가끔씩은 비누로 닦아내는 일이 나는 내가 목욕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발 닿는 데가 바깥은 잔디요, 집안은 카펫으로 덮여있다. 겨우 너댓평 될만한 마루가 부엌을 위해 있을 뿐이다.
남편은 지금도 밤이고 낮이고 양말을 벗지 못한다. 카펫의 감촉을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털썩 방바닥에 비벼대고 앉지 못한지가 이십여년이 되어간다. 온돌방을 외면하고 화이어 프레이스가 있는 미국땅을 밟은 지가 그렇게 된다. 언뜻언뜻 돋기시작한 흰 머리가 제법 등성듬성 우거져간다. 앉았다가 일어설 때마다 뼈들끼리 제자리 찾느라고 부시럭대는 소리가 가끔 옆사람에게 들리는 일이 잦아진다.
비누로 닦아냈던 장판 바닥이 있던 우물 있는 집이 꿈에 등장하곤 한다. 이런 꿈들로 하여 미국에 방치된 것 같은 느낌이 나를 붙들고 있다. 온돌방이 그리워지는 계절로 가고 있다. 사글거리는 장판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나른해진 전신을 흥근한 기쁨같은 따스한 온기가 온 몸 구석구석 뼛속까지 개운하게 해 주었다. 유난히 방바닥이 따뜻했던 탓에 이웃 엄마들이 찬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장판 바닥에 허리를 문 지르며 등을 녹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딩굴고 지냈었다.
가지고 온 얘깃거리 하나라도 흘려버릴라 흥근히 얼굴에 땀이 베이도록 주고 받았던 삶의 향기들. 사는 냄새에 취해 홍조띤 얼굴 마주보며 삶에 끼인 이끼들을 말끔히 씻어내고 했었던 온돌방 기억들.
아끼고 싶었던 기억중에 하나다. 훗날 장판 방에서 함께했던 이들을 만날 수 있는 해후가 온다면하고 생각하니 등선에 따뜻한 기류가 흐른다. 온돌방은 생각만으로도 나를 훈훈하게 해준다. 이 훈훈함으로 다가오는 찬 겨울을 다둑거리며 보내야겠다. 인생노정의 겨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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