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초기 이민의 실태를 보고한 기록을 보면 이들이 단순히 잘살기 위해서보다 봉건주의 제도와 일제 무단정치의 압박 등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각오와 결단에서 바다를 건너왔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은 1903년에 시작하여 1905년까지 3년 간 65척의 선박으로 7,226명이 왔는데 이 가운데 637명이 여자였다고 한다. 그 후 하와이 사탕농장의 참혹한 고된 노역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이 983명이다.
또한 1905년에 ‘을사보호조약’으로 한국인의 외국출입이 중지돼 이민도 중단됐다. 처음 하와이에 도착한 7,226명 가운데 1,999명이 하와이를 떠나 미국 본토의 철도공사장 등에 유입되었으며 그중 여자는 12명이었다 한다.
하와이 이민역사의 첫째 여성그룹은 1903~1905년 사이에 미국에 들어온 12명과 둘째 여성 그룹은 1910~1924년 사이 ‘사진결혼’으로 도미한 20명, 유학생 4명 모두 36명이다. 이들 가족과 자손들의 삶의 애환과 생활상을 찾아보는 것은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한국 이민을 묵인한 이유의 하나는 1905년에 체결한 태프트-가쯔라 밀약이다. 그 조약의 요지는 ‘미국은 일본제국이 한국을 합병해도 반대하지 않겠다’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1905년 이후 미국은 한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런 와중에 하와이에 이민 온 한국인들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비참한 삶을 살았다. 농장에서 소나 말과 같이 채찍질을 당하며 착취를 당하면서 미국의 환상은 깨지고 ‘죽지 못해 살수밖에’ 없었다.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을 맞아 초기 이민자들의 후손들 가운데서 성공한 인물들을 찾아 이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황경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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