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미국문단에 한인 최초로 입문한 작가 강용흘(1898∼1972년)의 ‘초당’(The Grass Roof)이 뉴욕의 한 고서적에서 발견됐다.
한인미주이민 100주년을 맞아 역사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본보가 입수한 이 책은 1931년 미국문단에 최초의 한국작품으로 소개돼 문학성을 크게 인정받은 ‘초당’의 저작권을 소유한 뉴욕 ‘찰스 스크라이브너스 썬스’(Charles Scribner’s Sons)가 1947년 뉴욕에서 출판한 것으로 출판사의 홍보용 ‘커버’가 보존된 상태이다.
강용흘은 첫 번째 작품인 ‘초당’에서 1인칭 화자를 통해 한청파(Chungpa Han)가 소년기에 한국에서 겪었던 1900년대∼1910년대의 경험들을 회상하며 시종 ‘아메리칸 드림’의 추구를 주인공의 설명으로 엮어 나간다.
출판사가 홍보용 커버에 게재한 당시 뉴욕타임스의 평론은 ‘초당’을 "일본과 중국의 현대 문학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으며 뉴욕헤럴드 트리뷴도 "위대한 가치의 인간 다큐멘타리"로 호평했다.
강용흘은 이 책으로 아시아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구겐하임 상 ‘((Guggenheim Fellowship)을 받는 영광을 차지, 한국문학과 한인이민 후세들의 미국문단 입문의 길을 닦았다.
1898년(미국기록은 1903년 태생) 함경북도 흥원에서 태어나 12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6년간 고등학교 교육과 미션스쿨에서 공부한 뒤 1919년 3.1 독립운동에 가입, 1년간 투옥된 경험이 있는 강용흘은 1921년 수중에 4달러를 갖고 미국으로 유학왔다.
보스턴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전공을 바꿔 1928년 미국인 아내 프랜시스 킨리(Frances Keenly)의 도움을 받아 영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해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1929년에는 최초의 번역시집 ‘동양의 시’(Oriental Poetry)를 펴냈으며 1903년 ‘초당’을 출판, 문학계에서 작가로 인정 받았다.로마대학, 뮌헨대학, 파리대학 등에서 연구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대학, 롱아일랜드 대학, 예일대학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강의했으며 1945년 한국이 해방되자 귀국, 미군정청 출판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서울대학교 문리대에 나가 강의도 했다.1950년 6.25 전쟁 직전 미국으로 건너와 문인으로서의 생활을 계속하다 1972년 12월 플로리다주 새틀라이트 비치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신용일 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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