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릎을 꿇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뒤 무거운 호구를 뒤집어쓴다. 자신의 키만한 죽도를 들면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직 죽도 끝에서 보이는 세상이 전부다.
김고으니(11)는 우리의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린 소녀다. 맑은 얼굴에 안경을 쓰고 웃을 때면 치아에 보철이 보이는 꼬마 아가씨다. 그럼에도 검도장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단순한 꼬마로만 보이지 않는다. 몰두하는 자세가 오히려 웬만한 어른보다 한 수 위다.
검도 자세가 완벽하게 나오는 6급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1시간씩 검도 도장인 ‘일검관’에서 땀을 흘린다. 검도 시작 1년째로 싫증을 느낄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점점 더 매력을 느끼는 듯 더욱 열심이다.
같이 도장에 다니는 오빠 김조으니(13)와 대련을 할 때도 있다. 오빠를 이기진 못하지만 그래도 자꾸 대련 한번 더하자고 조른다.검도 연습 중 죽도로 머리나 팔다리를 맞으면 눈물이 찔끔날 정도로 아프단다.
한창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깔끔을 떨 나이에 검도장에서 죽도를 들고 있는 이유를 물어봐도 딱히 대답이 없다. "그저 좋아서 해요." 아마 가장 솔직하면서도 정확한 대답일 것이다.
굳이 답을 찾자면 열심히 운동하고 난 뒤 호면(머리를 가리는 호구)을 벗을 때 느끼는 시원함이 좋다고나 할까. 미국에서 태어난 고으니는 현재 PS79에 다니는 6학년이다.
"health, focus, patient"
고으니는 검도를 시작한 뒤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짤막하게 대답한다.검도는 성장기의 청소년들에게 좋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자세가 반듯해진다. 꼿꼿한 검도의 자세가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이같은 자세는 사고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일검관 김건우 관장은 설명한다.
고으니는 농구를 좋아하고 수학을 제일 잘한다. 그렇지만 제일 좋아하는 것은 검도라고 말한다. 매력에 푹 빠져있다 보니 곧 유단자가 될 것이고 하루 빨리 그렇게 되고 싶다."운동 후 호면과 두건을 벗을 때 느낌은, 글쎄요 너무 좋아요, 그것밖에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고으니도 ‘스트레스 푼다’는 말을 벌써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어른들이 고으니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걸까.
<김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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