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의 법칙’ 달라진 한국 경제
▶ 유가발 하반기 3%대 물가 예상에도
▶ 전쟁 조기해결·반도체 호황 지속땐 성장률 전망보다 0.6%P 추가 상승
▶ 점도표 ‘연내 2회 금리인상’이 최다
2월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우리나라 경제의 주요 화두는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성장 경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지난 달 28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2월 전망 대비 물가 상승분(0.5%포인트)보다 성장률 상승분(0.6%포인트)을 더 높여 잡으면서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장의 힘이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누를 정도로 우리 경제의 체급이 높아졌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우리 경제가 ‘기준금리 3%, 성장률 3%대, 물가 상승률 3%’를 기록하며 ‘뉴 노멀’을 맞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통상 금리가 오르면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게 기존 경제학의 상식인데 당분간은 금리 상승에도 고성장세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최근 경제 성장세가 일시적 흐름이 아니라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중동 전쟁이 올 성장률을 0.4%포인트 낮추는 요인이지만 반도체 수출 확대가 0.7%포인트, 추가경정예산 및 증시 호황이 각각 0.2%포인트, 0.1%포인트 성장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중동 사태가 조기에 해결될 경우 올해 성장률이 2.6%보다 더 높게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한은 조사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 증가세가 예상보다 확대되고 미국과 이란 간 협상이 타결돼 중동 상황이 조기 진정되면 각각 0.5%포인트, 0.1%포인트 성장률이 추가로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전망치가 2.6%인 점을 고려하면 낙관 시나리오에서는 3.2%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내수 지표마저 성장률 상방 압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이날 발표한 ‘2026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310만5,000원으로 1년 전보다 5.3% 늘어 3년 만에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다. 물가 영향을 반영한 실질소비지출(3.1%)도 늘며 소비지출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2.4%)을 7분기 만에 웃돌았다. 코스피 급등 등 자산 가치 상승이 소비 여력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다만 물가 상승세는 부담이다. 한은은 이날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7%로 높였는데 월별 기준으로는 올 하반기에 3%를 넘을 것이 유력하다. 국제유가 급등세가 수개월 시차를 두고 반영되기 때문이다. 신 총재도 올 하반기에 물가 상승률 정점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물가 상승세 속에서 성장세가 꺾이지 않는 기현상이 예고되면서 연내 금리 인상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날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공개된 금통위원 7명의 6개월 후 금리 전망 점도표에 따르면 전체 21개 점(각 위원이 3개씩 표시) 중 19개가 ‘인상’으로 쏠렸다. 2회 인상 전망이 10개로 가장 많았고 1회 인상은 7개, 3회 인상은 2개였다. 올 연말이면 기준금리가 3%일 것이라는 전망이 제일 많은 셈이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2011년 이후 우리 경제에 ‘3·3·3’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11년에는 직전 연도(7%)의 성장률이 꺾이며 3%로 내려온 것이라 현 상황과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금리가 오르는데 성장률도 같이 오르는 흐름이 뉴 노멀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성장률과 물가·금리가 함께 오르는 현재의 흐름이 경기 호황의 신호라기보다는 외생 충격이 동시에 작용한 불안정한 결과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거시경제적으로는 세 변수가 서로 맞물려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은 각각 독립적인 충격의 영향을 받고 있다”며 “물가는 공급망 외생 충격, 성장률은 반도체 집중 현상으로 왜곡됐고 금리는 미국 등 대외 금리 상승의 영향을 받아 2.5%로 낮게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외부 충격의 성격상 기준금리를 올려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크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 원유 가격 급등은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라며 “경기가 과열돼서 물가가 오른 게 아니기 때문에 금리를 올린다고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거시경제지표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물가 상승은 중동 전쟁이라는 공급 측 충격에 의해 발생한 측면이 크다”며 “전쟁 여파가 단기에 그친다면 유가 상승도 진정되고 물가 압력도 낮아져 기준금리를 3%대까지 올리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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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한동훈·김병훈·김남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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