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지음
이룸 펴냄
문인들의 칩거와 절필선언이 유행병처럼 번진적이 있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수 없는 국외자 입장에서는 겉멋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람이 체하면 굶어야 하듯이 의식의 몸살과 체증을 이겨내기 위한 그들만의 섭생 방식으로 받아 들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은 아니다.
최고인기 작가로 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했던 박범신 명지대 교수가 최근 산문집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을 펴냈다. 이 산문집에는 지난 1993년 절필선언후 지난해 말까지 용인 한터마을에 ‘한터 산방’을 짓고 지내 온 10년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연을 관찰하면서, 그리고 텃밭에 농사를 지으면서 겪은 일화들과 깨달음을 작가 특유의 감수성 넘치는 문체로 들려 준다.
작가는 절필선언후 도피처로 들어 갔던 한터산방에서 자신의 문학적 부활을 경험했노라고 고백한다. “나는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문학이 싸움보다 사랑인줄 알았고 삶이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을 뿐 아니라 감히 날이 갈수록 보다 더 향기로워지는 인간의 길을 생각할수 있게 되었다.(에필로그 중에서)” 이 산문집은 작가의 문학적 욕구의 부활을 증거해 주는 작은 증거물인 셈이다. 이런 욕구의 부활은 대단히 왕성했던 듯 하다. 박범신은 이 수필집 외에 지난달에만도 소설집과 첫 시집을 거의 동시에 펴냈으니 말이다.
주위 정경을 그려 나가는 담담하면서도 세밀한 관찰과 사색이 박완서의 산문집 ‘두부’을 연상시킨다. 박완서는 4부로 구성돼 있는 이 책의 2부 ‘아치울 통신’을 통해 자신이 둥지를 틀고 사는 아차산 밑 아치울의 일상을 들려준 바 있다. ‘아치울 통신’ 11편의 글속에는 자연과의 교감속에서 작가가 깨닫게 된 지혜들을 잔잔히 보여 주는데 그 눈길이 따스하다.
박범신이 자연을 보는 시선 또한 박완서의 그것처럼 푸근하다. 그가 10년 용인생활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자연보다 진실로 위대한 것은 없다.” 공동체 생활을 해 나가는 박새를 관찰한 후 저자는 “흑백분규니 하는 건 사람 사는 세상이 만들어 낸 잔인한 말이다. 박새의 세계엔 그런 식의 종족 이기주의나 우월주의가 없다”며 인간들의 떼짓기를 질타한다.
잘 키우겠다며 너무 많이 준 복합 비료 때문에 죽은 감자를 앞에 두고는 자신의 행위가 과연 감자에 대한 사랑이었는가 라며 자문하고 자책한다. “얼마나 많은 착각, 이를테면 나의 ‘욕망’을 ‘사랑’이라고 여겨 왔는가. 그것은 대개 자신의 아집에 의한 욕망의 깊이만을 드러낼 뿐이다.”
제대로 된 집이라기 보다는 가건물에 가까운 공간속에서 용인생활을 한 저자는 가구가 거의 없는 텅빈 공간이 안겨주는 행복감에 대해 얘기하고 느림 예찬론도 빠뜨리지 않는다. 또 여러차례 찾은 히말라야에 관한 단상들도 실려 있다.
누구나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면 문득문득 자연에 파묻혀 쉬고 싶어진다. 그러나 박범신은 자연으로 돌아가 쉰다는 말은 잘못 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는 푹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화 되고 획일화 되기 쉬운 우리들 자신의 게으르고 천박한 어떤 자아와 싸워 이길 힘을 빌리기 위해 자연으로 가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참다운 자연에서의 삶에 어느정도의 물질적 결핍은 필수적인 듯 싶다. 저자는 용인생활 10년을 정리하고 지난해 10월 서울로 돌아갔다.
<조윤성 기자>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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