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필하모닉의 구스타보 두다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지난 7일 두다멜은 LA필 음악감독으로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지휘하는 마지막 연주회를 한없이 쏟아지는 박수세례 속에 성대하게 마쳤다. 진짜 마지막은 오는 8월 20~23일 할리웃 볼에서 열리는 4회의 축하공연들. 이것까지 끝나면 그의 LA필 음악감독 임기는 완전히 종료되고, 이후로는 명예감독으로서 한 시즌에 4주씩 돌아와 LA 팬들을 만나게 된다.
그의 첫 공연이 생각난다. 2009년 10월3일, 두다멜은 할리웃 볼에서 무료 커뮤니티 콘서트를 여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했다.(이때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올여름 또 다시 연주하며 환희에 찼던 여정을 마감한다.)
이어 10월8일, 디즈니 홀에서 열린 화려한 취임 갈라 콘서트에서는 말러 교향곡 1번과 존 애덤스의 ‘시티 누아르’를 세계 초연했다. 말러 1번은 그가 소년시절 처음 지휘공부를 시작할 때 총보를 완전히 외워버린,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곡이고, ‘시티 누아르’는 두다멜의 취임을 기념하여 위촉된 헌정곡이었다.
이후 17년 동안 그는 LA필과 함께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미국의 클래식음악 문화를 바꿔놓았다. LA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개방성과 자유로움으로 그에게 무한한 음악적 지평을 열어주었고, 그는 수많은 특별하고 독창적인 프로젝트들을 진두지휘하며 다른 오케스트라들이 부러워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현재 LA필하모닉은 세계에서 재정적으로 가장 탄탄한 오케스트라이고, 젊은 관객이 미국 최고 수준이며, 현대음악의 지원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혁신적 음악단체로 명성이 자자하다. 두다멜이 재임 기간 세계 초연한 신곡만 무려 300곡에 달한다니,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이다.
물론 이 모든 업적이 두다멜 만의 공로는 아니다. 전임 에사 페카 살로넨이 구축한 현대적 사운드와 데보라 보다 전 회장이 만들어놓은 효율적인 시스템 위에서 열정적인 에너지를 업고 비상한 것이다. 또한 프랭크 게리의 디즈니홀, 그 섬세한 무대와 음향 역시 그에게 엄청난 디테일과 폭발력을 선사한 ‘또 하나의 악기’가 되어주었다.
그의 많은 업적 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보면,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음악을 미국 클래식 문화에 안착시킨 최초의 지휘자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두다멜은 히스패닉 인구가 많은 LA의 이점을 살려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롬비아의 클래식 음악을 오케스트라 정규시즌 프로그램에 집어넣었다. 북미와 중남미를 하나의 음악문화권으로 묶는 시도를 통해 미국 오케스트라가 유럽 중심의 음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만든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업적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무료 음악교육을 제공하는 청소년오케스트라(YOLA)를 창단한 것이다. 자신이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수혜자였던 두다멜은 LA에 오자마자 같은 모델을 만들었고, 욜라는 현재 미 전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청소년 프로그램이자 커뮤니티의 큰 자산이 되었다. 그는 뉴욕 필하모닉에 가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다멜은 또한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린 최초의 지휘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2016년에 수퍼볼 역사상 처음으로 하프타임 쇼에서 욜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2025년에는 LA필과 함께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최초의 클래식 음악 공연을 이끌었다.
그뿐 아니라 16년에 걸친 ‘두다멜 펠로십’을 통해 무려 60명의 신진 지휘자들을 발굴하고 훈련시켜 세계 곳곳의 주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성장시켰는데, 음악계에서는 이 차세대 지휘자 양성을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그는 재임 중 오케스트라 단원의 절반인 50여명을 새로 교체함으로써 LA필의 사운드를 좀더 감각적이고 색채적이며 인간적으로 조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다멜의 마지막 콘서트는 4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위한 콘서트와 5, 6, 7일 축하 피날레였는데, 이중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이 4일 있었던 단원 헌정 콘서트(Celebrating the Musicians of LA Phil)였다.
이날 두다멜은 LA필의 각 파트 수석들을 위해 그들이 솔로 연주할 수 있는 12곡을 골라 연주했다. 바이올린, 첼로, 오보, 클라리넷, 플루트, 혼, 트럼펫은 물론이고, 여간해선 솔로 무대에 서기 힘든 더블베이스, 트럼본, 바순, 팀파니, 하프가 주인공이 되었다.
오랫동안 오케스트라의 일부로서만 연주했던 사람들을 디즈니홀 무대에 독주자로 세워 동료들과 함께 협연하게 해준 것이다. 비록 각각 4~9분에 불과한 짧은 연주였지만 어찌나 훈훈하고 감사하던지, 두다멜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런 음악회를 기획할 수 있는 사람 역시 그가 유일하고 최초일 것이다.
두다멜과 함께 했던 17년의 음악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뜨겁고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간이었다. 그라시아스 구스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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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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