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또 남한에 협박성 발언을 했다. 20일 평양에서 열린 제 5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에서 북측 수석대표가 기조연설에서 “남측이 핵문제요, 추가조치요 하면서 대결의 방향으로 나간다면 남북관계가 영으로 될 것이며 남측에서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남한이 한미우호관계를 천명한데 대한 북한의 이같은 반발은 서울 불바다 발언을 연상케 하는 북한의 상투적인 공갈협박성 발언이다.
YS정부 시절인 1994년에도 북핵문제가 남북한과 북미간의 주요 현안문제로 부각됐었다. 남북한은 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 특사 교환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실무회담을 개최했는데 3월 19일 판문점의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실무접촉에서 북측 단장이 서울 불바다 발언을 했다.
“여기서 서울은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될 것이다” 남한이 북핵문제의 해결책으로 외교적 압력행사를 고려한데 대한 불만에서 터져나온 이 발언으로 남북간 대화는 깨지고 한국민들의 남북 감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서울 불바다 발언이나 이번 남한 재난 발언은 모두 북핵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나온 북한의 위협 발언이다. 남한이 북한의 뜻에 맞지 않게 나온다면 북한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남한은 쑥밭이 되고 말 것이라는 공갈협박인 것이다. 남북간에 전쟁이 발생한다면 양측이 모두 피해를 당하겠지만 남한이 북한에 비해 도시화, 산업화가 훨씬 앞서있기 때문에 재난이 클 것이란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까.
남한이 아무리 북한의 심기를 건드린다고 해도, 또 북한이 어떤 공갈협박을 하고 있어도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킬 처지는 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북한의 전쟁 위협이 실제 존재할 때도 있었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의 군사력과 전쟁수행 능력은 남한을 능가했다.
또 동서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이 때는 남북간 분쟁이 발생한다 해도 미국이 개입하는데 상당히 큰 부담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남한은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성사시켰고 적십자회담을 추진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서 공산권이 붕괴된 후 미국의 한반도 개입은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남한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북한을 무제한 공격하여 초토화 시킬 수 있게 되었다.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 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북한은 강력한 김일성 체제였고 미국은 나약한 클린턴 행정부 때였다. 미국은 북 핵협상에서 국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북한의 벼랑끝 외교에 밀려 제네바협정이란 미봉책으로 북핵문제를 마무리 했다. 그러나 9.11사태 이후 부시행정부의 미국은 북핵문제에 단호한 입장이다.
북한이 끝까지 말을 듣지 않으면 군사력을 사용하여 북한정권을 붕괴시키는 사태가 올 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먼저 남한을 공격한다면 미국이 북한을 그냥 두겠는가. 아프간이나 이라크처럼 정권을 붕괴시켜 결과적으로 통일을 달성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공갈협박은 그저 공갈협박일 뿐이다. 과거 DJ정부는 자신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햇볕정책이 손상될 것을 두려워하여 북한의 말이라면 꼼짝 못하고 들어주었다. 그런 과정에서 햇볕정책의 문제점도 많이 드러났다. 노대통령은 방미 중 “이제는 북한이 하자는 대로만 따라가지는 않겠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반드시 그대로 해야 한다.
미국이 우방으로 남아있는 한 한국은 마음껏 활개쳐도 걸릴 것이 없다. 남북관계를 북한이 마음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 마음대로 끌고 가는 새로운 「노무현 독트린」이 햇볕정책의 맹점을 대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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