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경남 의령의 한 미감아 보호시설에서 보모로 지낸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소록도에서 살고 아이들은 시설에 보호됐었다.
시설 건물 오른쪽 산 아래로는 맑은 샛강이 흐르고 둑을 지나면 넓은 논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읍내 유치원에서 오전 일을 끝내고, 둑길을 따라 걸어오면 아이들은 내 시간에 맞춰서 둑으로 마중을 나왔다. 먹을 것이 풍족치 못했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여름이면 주인이 추수하고 난 고구마 밭에서 작은 고구마를 주워 샛강에서 씻어 옆에 있던 제재소에서 주는 톱밥으로 불을 피워 삶아서 그 중에 제일 큰 것을 내 손에 쥐어주곤 했다. 늦은 가을이면 나무 높이 매달린 홍시를 긴 막대기로 떨어뜨려서 얼굴에 가득 묻히며 먹으면서 즐거워했고, 추수가 끝난 후 배추뿌리, 무 역시 좋은 간식이었다.
매주 수요일엔 일본인 독지가가 기부한 일제 픽업트럭을 타고 읍내교회로 가서 특송을 했는데 트럭 덕분에 아이들이 밤에 긴 둑길을 걷지 않아도 돼서 만나본 적 없는 그 분이 참 고마웠다. 성탄절에는 이곳저곳에서 보내온 사랑이 담긴 선물을 받고 잠 못 들고 기뻐하던 모습들을 잊을 수가 없다.
2년 전 한국일보 오피니언란에서 르완다 선교 칼럼을 읽은 후부터 조금씩 르완다 어린이들이 내 마음으로 밀고 들어온다. 비록 사진으로만 만난 모습들이지만 너무 맑아서 눈물이 고여 있는 것 같은 눈빛과 천진스런 미소가 20여년 전 나와 함께 했던 아이들의 모습과 겹쳐지곤 한다.
올 성탄절엔 어떻게 르완다 어린이들에게 다가가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 계획해 본다.
이연희/로즈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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