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진행되는 대북 송금 수사의 시한 연장 여부와 DJ 수사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엉뚱한 비리설이 터져 이목을 끌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직전, 그러니까 대북 송금 직전에 현대그룹이 100억 원의 비자금을 돈 세탁하여 정치권에 로비한 징후가 포착되었다는 것이다. 이 돈이 대북 송금과 직접 관련이 있는 돈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까지 통치 차원 운운했던 대북 송금이 금품 스캔들로 전락할 우려마저 없지 않다.
불행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큰돈이 움직일 때는 항상 비리가 따랐다. 경제 건설기였던 공화당 시절 외국에서 차관을 도입할 때 으레 일정금액을 떼어 정치자금으로 바쳤다. 공장을 짓고 사업을 하는데는 정부의 허가와 뒷받침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서 재벌이 정치자금을 내고 특혜를 받는 이른바 정경유착이 이루어졌다. 그 거래를 성사시켜준 정치인도 한 몫을 챙겨 부정부패가 일상화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후락씨가 말했던 ‘떡고물’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한국사회의 집단이기를 망국적 병폐로 꼽지만 집단이기로 말하자면 정치권과 정치인들처럼 파렴치한 이기집단은 찾아볼 수 없다. ‘밭 팔아 논 살 때는 쌀밥 먹기 위해서’라는 말처럼 정권을 잡기 위해 패거리를 만들어 일단 정권을 잡고 나면 힘있고 돈 생기는 자리는 싹쓸이하고 정책의 결정과 집행을 독점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공권력이란 칼자루를 마구 휘두르기도 했다.
이 권력을 잡기 위하여 그들은 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고 지역감정을 부추겼고 이합집산을 했는지를 사람들은 모두 안다. 한국에서 집단이기가 판을 치게 된 것은 이같은 정치가 초래한 것이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3대 거짓말로 처녀가 시집 안 간다. 노인이 죽고 싶다, 상인이 밑져서 판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보다 더한 거짓말이 있다. 정치인이 돈 안 먹었다는 것과 정권이 부정부패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돈 안 먹었다는 정치인이 검찰에 불려가기만 하면 들통 났고 언제나 부정부패 사건이 터지면 권력의 실세들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거짓말을 입증해 준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정치가 무슨 일을 벌일 때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되었다.
정부가 행정수도를 옮긴다고 하고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하고 또 서울에 청계천을 복원한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고 어느 건설회사가 특혜를 받아 돈을 벌게 될 것인지 관심이 간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어떤 정치인이 거래를 주선하여 돈을 얼마나 벌게 될지, 그래서 또 어떤 부정사건이 터질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북 송금 사건도 단순히 북한에 돈을 퍼준 사건을 넘어 떡고물을 챙긴 부정사건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몇 천 만원짜리 뇌물을 건네줄 때도 돈을 전달하는 사람이 중간에서 돈을 떼어먹는 배달사고가 나는데 5억 달러인가 얼마인가 하는 거액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떡고물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돈을 받은 김정일이 얼마라는 영수증을 써준 것도 아니고, 또 영수증을 써 주더라도 얼마든지 가짜 영수증을 써 주고도 남을 김정일이니 말이다. 또 돈을 줄 당시 대통령이 정치 9단이라고 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정치가 그런 것이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이런 사정으로 볼 때 특검 수사기간의 연장을 반대하고 DJ의 수사를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공연한 오해를 받을 소지도 있다. 혹시나 떡고물 파동이 자신들에게 번지지 않을까 해서 지레 겁을 먹고 특검 활동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나 하는 오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검이 대북 송금 사건의 수사를 계속한다고 해도 대북 송금의 배달사고 여부는 밝혀낼 수 없을 것이다. 특검이 김정일을 소환 심문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검 수사는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하여 국민적 의혹을 최대한 풀어주는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기영 본보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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