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박물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교환교수로 한국실 고문인 이인숙 박사(53)는 내년에 이 박물관에서 열릴 사상 최대 규모의 한국문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메트 뮤지엄은 2004년 10월부터 중국 한대에서 당대에 이르는 시기의 중국 및 동아 문화 특별 전시회를 개최하는데 이박사는 이 시기에 한국문화를 꽃피운 신라의 보물 전시회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전시회는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회로서는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신라의 보물이 세계 문화사에서 어떤 특징을 가지며 세계의 다른 문화와 어떤 연결을 갖는지를 학술적으로 규명하여 소개함으로써 삼국시대의 대외 교섭을 알려주는 전시회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박사는 메트 뮤지엄으로부터 전시 계획을 확정받아 한국의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전시물 대여 교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측으로부터 전시물을 대여하겠다는 확답을 받지 못해 자칫 전시회가 무산될까봐 가슴을 졸이고 있단다. 메트 뮤지엄에서 이와 같이 대규모 한국문화 전시회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다시 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전시회에 유독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자신이 신라 보물의 전문가인데다 메트 뮤지엄과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고고학자이며 박물관 학자인 그는 일찌기 신라의 유리유물에 매료되어 유리를 연구한 세계적인 유리 역사 연구가이다
지난 1995년 메트 뮤지엄의 교환교수로 1년 동안 신라 유물과 전세계 유리 문화의 관련성을 연구, 동서고금의 유리 문화에 대한 저서를 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 신라의 문화를 세계인에 보여주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박사는 서울 문리대 고고인류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분시대(삼국시대)를 전공한 그는 삼국시대에 서역문화와 교류한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유물이 많은데 특히 신라 고분에서 나온 30개의 로만 글라스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한다.그는 박사과정을 하던 1985년부터 신라 고분의 유리제품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 세계를 돌며 로마의 유리 제품을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일본을 거쳐 미국에 와서는 메트 뮤지엄 등 웬만한 박물관을 모두 섭렵했고 스미소니안 박물관에서 단기 코스를 밟기도 했다. 유럽에 건너가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학회에 참석하여 자료를 수집했다.
이렇게 연구자료들 얻기 위해 세계 곳곳의 박물관을 다니다가 그는 박물관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되었다. 박물관의 조직과 행정, 소장품의 수집과 행사 등 운영 및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는 1986년 서울대 등 대학에서 고고인류학을 강의하면서 서울대 박물관의 학예관으로 새 분야의 일을 시작했고 박물관학을 새로 개설,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1990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그는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업이 1991년 유네스코 주관으로 실시된 실크로드 대탐사에 참가한 것이다. 소련정부의 초청을 받은 전세계의 학술조사단 200명 중에는 이박사 등 한국인 2명이 포함됐다. 중앙아시아 5개국에 걸친 탐사활동은 3개월만에 끝났다. 소련연방이 해체되기 직전의 일이라고 한다.그 후에도 1992년과 1993년 남러시아 코카사스의 실크로드 연구를 위해 현지탐사와 세미나
에 참석했다. 그에 따르면 신라 고분에서 나온 로만 글라스는 로마시대인 AD 4세기경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만들어졌고 실크로드의 스탭 루트를 따라 신라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박사의 이같은 학문적 성과는 MBC-TV의 다큐멘타리 ‘실크 로드, 유리의 길’과 KBS 역사 스페셜 ‘한국의 재발견’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는 1996년 경기도가 용인에 경기도 박물관을 개설할 때 학예실장으로 실무 책임을 맡아 박물관 설립을 실질적으로 지휘했고 이어 2000년에 관장에 취임, 지난 1월 메트 뮤지엄에 오기 전까지 재직했다. 또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박물관 협의회의 한국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3년마다 열리는 국제박물관 총회를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2004년 한국에 유치했다. 그래서 그는 메트 뮤지엄 전시회와 함께 이 총회 준비에도 정열을 쏟고 있다. 그는 이 총회가 한국의 박물관을 세계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뉴욕의 메트 뮤지엄은 하루 입장객이 1만5,000명에 이르는 말 그대로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라고 한다. 이 박물관의 아시아관 책임자는 옥스포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한 중국계 James Watt 박사인데 한국 문화에 조예와 관심이 대단히 깊은 사람이라고 한다.
지난 1998년 메트 뮤지엄에는 한국실이 개설되었으나 규모와 자료가 빈약한 형편이기 때문에 예산을 확보하여 소장품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다행히 최근에 박물관측이 한국어 안내 팜플렛을 제작하고 한국말 갤러리 투어를 실시하는 등 한국에 대한 배려를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박사는 박물관이야말로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의 전당이라고 하면서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 21세기에는 박물관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역설한다. 박물관은 문화교류 뿐만 아니라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는 그는 한국의 박물관이 세계화 시대에 국제교류의 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물관의 유지는 자원봉사와 기부금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자원봉사와 기부금에 익숙하지 않은 한인들에게는 박물관이 생활에서 동떨어진 곳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는 재미한인들이 메트 뮤지엄과 같은 세계적 박물관에 기부를 하고 이런 박물관을 통해 한국문화를 소개함으로서 한인과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이민 100주년이라고 하여 여러가지 행사를 하고 있는데 몇년 전부터 미리 박물관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회를 계획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이박사는 한미간에 여러 분야의 교류가 활발하지만 문화교류는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국 문화재를 미국에서 전시하고 미국 문화재를 한국에서 전시하는 교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하며 자신이 그런 일에 전력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그가 내년에 개최를 추진하는 신라 보물 전시회가 바로 그런 것이기에 이 전시회의 성사에 우
리는 또한 큰 기대를 걸게 된다.
<이기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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