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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
미국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세계 경제에도 밝은 기운이 돌고 있다.
15년 가까이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일본도 마침내 회복의 자신감을 보이고, 유럽도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그런데 주목할 점은 미국이 세계 경제 회복의 유일한 견인차이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경기 회복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분석을 소개한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은 세계경제의 25%, 경제성장률의 60%의 비중을 차지한다며, 미국이 세계 경제의 유일한 견인차이므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회사인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한다.
이 회사의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95년부터 2002년까지 전세계 경제성장의 증가액이 3조1,630억 달러에 이르고, 이중 3조450억 달러가 미국에서 창출됐다고 주장했다. 즉 지난 7년동안 증가한 전세계 부의 96%가 미국에서 나왔고, 나머지 나라에서는 증가한 부의 비중이 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두 자료는 서로 다른 수치를 제시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9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의 성장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1년에 미국이 1% 미만의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2002년에 2%대의 저성장을 기록하는 동안에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다.
세계 경제의 성장원동력인 미국이 완만하게 가라앉은 것이 다른 나라를 침체로 몰아 넣은 것이다. 적어도 미국이 연간 4~5%의 성장을 해야 다른 나라의 성장을 이끌어줄 수 있는데, 지난 3년 동안 미국 자체의 사정이 어렵다보니 미국에 기대어 살던 다른 나라의 경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
이다.
그러면 미국은 어떤 과정을 통해 다른 나라에 부를 나눠주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환율 시스템을 매개로 한 것이다. 95년부터 2002년 상반기까지 미국은 달러 강세(strong dollar) 정책을 유지했고, 이를 통해 다른 나라의 물건을 사주었다.
모건스탠리의 분석을 토대로 할때 미국에서 생산된 전세계 96%의 부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난해 GDP의 4%이던 적자규모는 올해 5.1%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위험수위로 지목한 5%를 넘었다. 그만큼 미국은 다른 나라의 성장을 견인했고, 막대한 무역적자를 세계기축통화인 달러 발행을 통해 메워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경제 회복기에 달러 약세정책을 취하고 있다. 무역적자가 너무 많고,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다른 한편에선 미국이 다른 나라의 성장을 도와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러 약세는 경쟁국에 치명적이다. 미국은 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독일 마르크와 일본 엔화에 대해 강제 절하정책을 취했다. 95년까지 전개된 달러 절하기에 일본 엔화는 달러당 240엔에서 80엔까지 절상됐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10년 사이에 3배의 원가 상승압력을 받고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이 기간에 일본과 독일의 경쟁력이 쇠하고, 미국이 장기 호황의 기반을 형성한 것도 미국이 바로 달러 절하라는 무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95년부터 2002년까지 달러 절상기에 미국이 자국에서 창출된 부를 나눠주던 시기와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고,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 자동차가 살아나는 계기가 됐다.
올들어 미국은 또다시 달러 절하정책을 취하고 있다. 상반기 중에 달러는 유로에 대해 20% 절하됐다. 그 결과는 유럽의 경기침체다. 국제시장에서 가격이 20% 올라 유럽산 제품이 경쟁력을 잃게 됐고,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 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제 공은 아시아로 넘어가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풀어 엔화를 방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중국에게도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한국의 원화도 절상될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가 회복된다고 반드시 세계 경제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달러 강세가 동반되지 않는한 세계 경제는 불안한 회복의 길을 것이 분명하고, 한국 경제도 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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