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여자들한테 그렇게 좋다네. 그래서 한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와서 무척 사간대. 강남에서 얼마나 불티나게 팔리는지 없어서 못 판대
터키로 여행을 다녀온 선배가 그곳에서 사왔다는 감청색 유리병을 보여주며 말했다. 석류 엑기스라고 했다.
우리 몸에 좋다는 엑기스가 어디 하나 둘인가. 홍삼 엑기스, 매실 엑기스, 사골 엑기스, 약초 엑기스, 버섯 엑기스, 갖가지 과일 엑기스, 심지어 나방 번데기 엑기스 등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엑기스 자체가 건강 보조식품이나 의약품 자재로 쓰이기도 하지만 소비생활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먹거리에도 이런 엑기스를 함유해 기능성을 가진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엑기스 열풍은 식음료 제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책의 엑기스 같은 부분을 추출해 주옥같은 해설까지 곁들여주는 글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4월부터 한국일보 1면에 매일 연재되고있는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에 100만명을 넘었다는 편지의 가족 수만 보더라도 그 인기도를 알 수 있다. 어느 독자는 아침에 신문을 받으면 그 글을 제일 먼저 읽는다며 국민들에게 널리 읽혀져 우리 사회가 좀더 밝고 건강해졌으면 한다라고 했다. 저자 자신은 아침편지가 독자들에게 ‘마음의 비타민’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깊은 산 속의 옹달샘 물’로 오래 남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저자가 인용하는 책의 폭은 매우 넓고, 그 책에서 인용하는 대목, 그리고 끝에 붙이는 해설 자체는 그가 의도하는 대로 옹달샘 물처럼 맑고 상쾌하다. 연재가 시작된 지 여섯 달이 되어 가는 오늘도 그의 편지의 순도와 질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엑기스를 매일 받아먹는 우리 모두에게 요주의.
옹달샘 물이 귀한 것은 그것이 깊은 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숲 속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새소리를 벗삼아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에 잠깐씩 눈부셔하기도 하고 혹은 길을 덮어버린 잡초들을 손으로 헤쳐가며 내 발로 땅을 밟으며 걸어 들어가 작은 샘을 발견한다. 작은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손바가지를 만들어 한 모금 길어 올려 입으로 가져간다. 그 귀한 물을 어찌 플래스틱 병에 포장되어 문 앞에 배달되어 온 옹달샘 물과 비교할 수 있으랴.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여행은 체험이다. 독서는 작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남이 읽어보고 엑기스라고 생각되는 부분만 골라 소화가 잘 되도록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 대로 덥석덥석 받아 삼키기만 한다면 우리는 유아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수백 권의 책의 엑기스를 섭취하는 것보다는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직접 읽어 가슴으로 얻은 한 구절이 더 귀하고 우리 마음에 오래 남아 진정한 영혼의 보약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아침편지에서는 ‘반 고흐, 영혼의 편지’의 대목을 인용했다.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 않는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마디도 버릴 것 없는 엑기스 같은 대목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 할 수 있기까지의 반 고흐의 삶 자체를 책으로 읽어 본 이에게는 위의 대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화가의 삶이 주는 메시지가 읽는 이의 영혼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그 아침편지 대목에 붙여진 해설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가보지 않은 땅을 밟는 것이다. 남이 그어 놓은 밑줄만 읽고 가벼운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내 가슴으로 밟으며 작가와 여행을 떠나보는 성숙한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영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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