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걸프전쟁 때 미국이 왜 바그다드로 쳐들어가 후세인 정권을 쓰러뜨리지 않았느냐가 문제된 적이 있었다. 그때 딕 체니 국방장관(현 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바그다드를 점령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문제는 후세인이 지하로 숨을 경우, 그를 어떻게 찾아내느냐이다. 수색작업에 엄청난 병력이 투입되어야 하고 그렇게 해도 꼭 체포된다는 보장이 없다. 잘못하면 미군이 전쟁에 이기고도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다. 후세인 생포는 너무나 도박이다
미군이 최근 후세인을 잡기 위해 티크리트 지방에서 대규모 수색작전을 펼쳐왔지만 후세인 체포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부시 대통령이 무모한 도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후세인이 마침내 잡힌 것이다. 부시 측근들까지 놀라고 있다.
부시가와 후세인은 악연이다. 후세인은 걸프전쟁에서 형편없이 패하자 분을 못 이겨 부시(1세)의 얼굴을 바그다드에서 가장 유명한 라시드 호텔의 현관바닥에 그려 넣은 다음 호텔을 찾는 사람마다 밟고 지나가도록 만들었었다. 아랍 관습에 의하면 이는 최대의 인격 모욕이며 불구대천의 원수에게나 하는 저주다. 게다가 93년 부시(1세)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쿠웨이트를 방문하려고 했을 때 후세인은 치밀한 부시 암살계획을 세웠으며 실행 직전에 탄로나 미수에 그친 적이 있다.
부시가와 후세인은 이처럼 개인적인 감정이 얽혀있기 때문에 지난 봄 이라크 전쟁 때 부시 대통령이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켰다는 비난까지 등장한 적이 있다. 이같은 감정관계를 배경으로 하여 살펴보면 왜 부시 대통령이 후세인 체포에 열을 올려왔는지 그림이 잡힌다. 또 후세인 저항세력도 왜 그토록 악착같이 부시에게 망신을 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철천지원수인 셈이다. 결국 후세인이 땅굴에 숨어 있다가 미군에게 잡힘으로써 부시와의 대결에서 비참하게 패배하게 되었다. 후세인 생포는 미국인 모두가 반가운 뉴스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가슴 벅찬 기쁨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 TV에 나와 후세인 체포 문제에 대해 언급할 때의 그의 표정을 잘 살펴보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후세인을 잡았을까.
후세인의 아들 우데이의 심복이었으며 보안사 간부를 지낸 X를 금요일인 12일 후세인 지지자 소탕작전에서 잡아들인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CIA와 미군 당국이 X를 신문과정에서 어떻게 구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좌우간 X가 입을 연지 3시간 후인 토요일 오후 8시 전격적으로 후세인을 체포했으며 X 자신이 미군 수색대와 동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세인을 잡았지만 미국으로서는 골치다. 무엇보다 시큐리티가 완벽한 감옥이 없다. 추종자들이 습격 탈취하지 못할 정도의 철벽같은 감옥을 새로 지어야 할 형편이다. 또 국민 여론에 따라 이라크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도 약간 불안하다. 그가 재판과정에서 순교자처럼 비치는 것도 적극 막아야 한다. 미국은 후세인이 비굴하게 보이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시저스’에 용감한 자는 한번 죽지만 비겁한 자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라크의 우상이었던 후세인은 자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망신은 망신대로 당하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는 수모를 당할 것이다. 비겁함을 선택했기 때문에 한번 죽지 않고 여러 번 죽어야 하는 고통이 남아있다.
chullee@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