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이전 한인들의 미국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연달아 발견되고 있다.
본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880년 연방센서스, 1870년 연방센서스, 1900년 하와이 센서스, 1920년 연방센서스, 1880년 장로교 아태평양노회 회의록 같은 공식 문서들과 수많은 당시 신문들이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1870년 연방센서스에 따르면 최소 81명의 한인 추정자가 당시 미국에 살았다. 81명은 당시 서베이에 응답한 Kim(60), Gim(15), Pak(6), Bak(2)씨 성을 가진 중국인 숫자다. 김씨와 박씨는 한국 고유의 성이고, 당시는 조미통상조약 이전이어서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한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1900년 하와이 센서스 결과에도 Kim(58), Gim(6), Pak(9), Bak(2)씨 성을 가진 중국인이 75명 있었다.
한국계 이민자를 ‘Korean’으로 분류한 1920년 센서스는 더욱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1920년 센서스는 조사자의 입국연도를 포함하고 있는데, 본보가 일부 한인자료를 분석한 결과 하와이 마우이섬에 거주했던 김순진(당시 42세)씨는 1894년 하와이에 도착했다. 아이다호주 링컨시에 거주한 G.S. 김(당시 55세)씨도 1902년에 입국했다고 적혀 있다.
당시 신문들도 좋은 역사 교과서다. 캘리포니아주 우드랜드시에서 발행되던 ‘Woodland Daily Democrat’ 1898년 11월26일자는 ‘로노크대(Roanoke College)를 졸업한 첫 번째 한인 문학사인 Kin Beung Surh(서광범으로 추정)가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Arizona Republican’은 1900년 7월31일자에서 ‘첫 번째 한인 여성 의대 졸업생인 Mme Pak(에스더 박으로 추정)이 우등생으로 보스턴의 의과대학을 졸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880년 미 본토에 한인 있었다’는 본보 보도가 나간 뒤 초기 한인 이민사와 관련한 독자 제보도 이어졌다.
한 독자는 전화를 걸어 “1880년 장로교 미태평양노회 회의록에 ‘(미국에 와 있는) 한인 교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회의를 했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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