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표면적으로는 엄격한 정교 분리를 주장해오던 보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정당’이라는 것을 급조해서 정치에 친히 개입하는 경이적인 사건을 연출했다.
사실 이들 기독교 정당의 주도자들은 이미 보수 수구 세력의 좌장격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고,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철저히 정교 분리의 원칙에서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비난해 왔던 인물들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부당한 군사 독재의 권력에 빌붙어서 소위 가증스러운 조찬기도회 등을 통하여 음으로 양으로 협력하고 불의한 정권으로부터 철저하게 혜택을 입었던 자들이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정교의 분리를 명목으로 민주화 과정은 철저히 외면해오던 자들이 민주화 운동이 진전되어 이제는 자유로운 정치 환경이 형성되자 또다시 그럴듯한 사유를 빌미로 기독교 정당을 만들고 일부 정권의 장악을 시도했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은 겨우 26만 명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고, 전체 투표자의 1.1%에 지나는 득표에만 불과하였다. 비례대표는 물론 지역구에서도 단 한 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내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정당의 출현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회용 해프닝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만약, 기독교 정당이 그럴싸한 성과를 거두었다면, 다원종교 사회구조를 가진 조국에서는 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기독교 정당이 자리를 잡아가면, 또 불교정당이 나오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면 불교와 기독교간에는 말할 수 없는 정치적 경쟁이 발생하고 말 것이고, 결국엔 다원종교 사회구조로 말미암은 정치 판의 종교 갈등은 우리 민족을 참으로 알 수 없는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 가고 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기독교 정당을 만들려 했던 이들은 한 마디로 국민의 정치 의식을 무척이나 우습게 보았던 듯 싶다. 그래서 최근 한신대학교 신학연구소에서는 학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하여 국민의식들을 조사해본 결과,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제 보수교회 또는 진보교회의 출석여부와 상관없이 성숙한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가령,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대부분 북녘 동포들을 기아로 몰고 간 독재자(84.8%)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민족 통일을 위해서는 김 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에 대해서도 당연히 환영하겠다(85.9%)는 태도가 다수일 만큼 정치적 의식이 성숙하게 고양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한국은 건국초부터 정교분리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으나 기독교와 정치 권력의 상관관계를 부정할 수만은 없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기독교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정치 권력에 대항하고, 민중들의 기본 인권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참으로 무던히도 인권운동을 지속 전개하였다.
그러나 정치 권력은 이런 교회의 신앙과 양심의 표현들을 무력적으로 제지했었다. 그래서 사실, 한국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신앙 양심에 기초하여 정치 권력의 부당성을 지적했기 때문에 온갖 정치적 탄압을 다 감내해야만 했던 참으로 놀라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무척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 우리들 도 변해야만 한다. 그리고 변화를 주저해서도 안될 것이다. 단순히 그저 조국을 떠나올 당시의 향수나 가치관들만을 고집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별히 우리 모두가 지금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21세기는 더욱 더 겸허하게 국민을 섬기고 민의를 존중하는 정치권력이 자리를 잡아가는 시대임에 틀림없다.
조일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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