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어느 정도 불경기인가는 인천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느낄 수 있다. 보통 오후 6시께 인천공항에 도착해 서울 시내로 들어갈라치면 트래픽에 걸려 애먹게 마련인데 지금은 차가 너무 잘 빠져 신기할 정도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교통 시스템에 무슨 혁명적인 변화라도 있었나?”하고 마중 나온 사람에게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요즘 자기 차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은 정신 나갔거나 간 큰 사람이라는 것이다. 기름 값이 너무 올라 대부분 전철을 이용하며 차 타고 시내 나오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통체증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었다는 이야기다.
인천공항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공항 고속도로가 한가하기 짝이 없고 자가용 타고 공항에 배웅하는 사람은 드물다. 공항에 오려면 톨게이트 비용만 1만3,000원을 물어야 하니 개솔린 값까지 합치면 뻐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외국에서 누가 전화를 걸어 공항에 마중 나와 달라는 부탁을 하면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한다.
서울 불경기를 실감케 하는 또 하나의 현상은 택시다. 빈차가 얼마나 많은지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반갑기 짝이 없다. 특히 강남에서 밤에 택시를 잡으려면 과거에는 너무 어려워 모범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일반택시들이 줄을 서있다. 타기만 하면 운전기사들이 반가워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손님 없어 죽을 지경입니다” 소리를 먼저 한다. 한번은 아침 7시께 택시를 탔더니 운전기사가 “3시간 동안 4,000원밖에 못 벌었다”며 울상이다. 회사에 하루 9만원 들여놓고 나머지를 운전기사가 갖는 것이 계약내용인데 매상을 올리지 못하면 자기 돈을 질러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 벌기는커녕 오히려 까먹으니 차라리 집에서 노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한국의 불경기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잘 나가던 갈비집과 일본식당들이 파리를 날리고 있고 백화점도 한가하다. 하도 손님들이 안 오니까 며칠 전 어느 백화점은 ‘의류 10원 세일’을 실시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여성들이 몰려 들어가는 모습은 아비규환이었다. 서울의 2류호텔 지방의 일류호텔들은 방이 텅텅 비어 손님이 40% 디스카운트를 요구해도 선뜻 받아들인다.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장사가 안돼 죽겠다”는 소리뿐이다. 불경기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장사하는 친지들에게 사방 전화했더니 정말 심각한 표정들이다. IMF 때보다 더 심하고 이대로 가면 가게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빈 가게가 나오기 시작하면 상가 모양이 흉해지니까 급한 나머지 지하상가 같은 데서는 권리금은 물론 렌트비도 새 입주자에게 안 받는 경우가 허다하고 관리비만 내라는 파격적인 자세를 보인다고 한다.
불경기가 워낙 심하다보니까 산에서 등산객을 터는 강도까지 생겨나 한가한 샛길 코스는 피한다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도 있었다. 임꺽정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터지니 말세 현상이라는 것이다. 서민들 살기가 이렇게 어려운데도 청와대에서는 여당 국회의원 당선자 파티를 열고 “산자여 따르라!”는 이상한 노래만 불러대고 있으니 정신 없는 정치인들이라고 했다.
경제가 어려우면 사람들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부정적이며 비판적이 되게 마련이다. 모이기만 하면 현정권 욕이다. 노무현 정권 비판하는 사람들은 주로 보수세력인줄 알았는데 서울 와서 보니 그림이 좀 다르다. 서민경제가 위험수위에 이르렀으며 보수냐, 진보냐를 따질 때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 경제는 지금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것 같다.(서울에서)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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