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초나라 때 성문에 불이 나자 사람들은 근처 연못으로 달려가 물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불이 성 전체로 옮겨 붙지 않도록 막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정신없이 물을 퍼 날라 불을 끄고 보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연못의 물이 말라 거기 살고 있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물고기들로 보면 아무 잘못도 없이, 그리고 전혀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 때문에 애꿎게 희생이 된 것이다. 이런 억울한 재앙을 그래서 지어지앙(池魚之殃)이라고 한다.
“이 비열하고 추악한 전쟁의 광기 속에서 애꿎은 한 생명이 이유 없이 스러졌다”“그 청년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하나”“너무 가슴이 아프고 분노가 치밀어 손이 다 떨린다”…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되었던 김선일씨가 결국 참변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에서는 그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한 국민들이 인터넷을 메웠다. 허탈, 충격, 경악의 반응들이다. 그의 참수 소식에 가슴이 메어지기는 미주 한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은 부시가 일으켰는데 왜 엉뚱하게 한국 청년이 살해되느냐”“얼마 전 미국인들이 처형되었을 때만 해도 막연히 안됐다는 정도였는데 막상 한국인이 참수를 당하니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제3자인 우리의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그 부모들 심정은 오죽할까”라는 말들이 22일 하루종일 주변에서 들렸다.
세상에 많은 고통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큰 고통은 자식의 죽음을 보는 부모의 슬픔이라고 한다.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질 정도의 고통, 단장(斷腸)의 슬픔이다. 4세기께 진나라의 고사에서 유래된 이야기이다.
진나라의 환온이 이웃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배를 타고 양자강의 협곡을 통과할 때였다. 병사중 한 사람이 장난 삼아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잡아 배에 실었다고 한다. 그러자 어미 원숭이가 슬피 울부짖으며 배가 강기슭에 닿을 때까지 100여리를 강가 벼랑을 따라 쫓아 왔다. 그리고는 강가에 닿은 배에 뛰어 올랐지만 그 즉시 죽고 말았다. 죽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자녀가 죽으면 슬픔으로 인해 부모의 수명이 단축된다는 사실은 현대 의학계의 조사결과로도 밝혀지고 있다. 덴마크의 한 연구진이 몇 달전 발표한 바에 의하면 18세 미만의 자식을 잃고 난 어머니는 자식 사망 후 3년 안에 사망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어머니에 비해 3배나 높고, 18년 내에 사망할 가능성은 18%가 높다.
증오는 증오를,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얼마나 많은 단장의 슬픔이 있고 나서야 살육의 광기가 진정될지, 이라크 사태의 앞이 안 보인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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