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특별 인터뷰 무공훈장 4개 변희선옹
▶ 어제일 같은데 벌써 54년...
“동족간 전쟁 다시는 없어야”
“내무반에서 자는데 새벽에 비상이 걸렸어. 전쟁이 난 거야. 그날 밤 용산에 있던 부대(18연대)가 민간인 차량을 징발해 포천으로 이동했어. 인민군 부대가 오는 걸 기습해 사단 참모장등 13명을 포로로 잡고 격퇴했어. 그 첫 전투를 아직 잊을 수 없어.”
군번 1606529, 변희선(77세.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거주.사진)씨다. 일등중사 계급으로 동족의 유혈사 속으로 출진한 노병은 첫 전투를 회상하다 문득 세월의 삼엄함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벌써 그게 54년이나 흘렀어. 바로 어제 일 같은데….”
평남 강서군이 향리였다. 해방이 되고 평양공업전문학교에 다니던 변희선은 당시 소련군의 횡포에 저항하다 단신 월남했다. 가족들은 1.4후퇴 때 월남, 뒤늦게 재회할 수 있었다.
서울에 왔지만 그가 할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반공단체인 서북청년회에서 활동하다 마침 창설된 국방경비대에 입대했다. 1947년이었다.
현 3사단의 전신인 3여단 6연대에 있다 좌익의 대구봉기가 일어나자 18연대 창설요원으로 차출돼 진압군으로 투입되기도 했다.
용산 삼각지에 주둔중 38선이 소련제 탱크에 무너졌다. 2대대 8중대 2소대 분대장으로 정전까지의 3년은 적과의 쫓 기고 쫓는 생존의 기록이었다.
포천 전투의 첫 승을 뒤로 하고 ‘작전상 후퇴’ 대열에 올랐다. 늙은 대통령은 국민을 버리고 도망갔고 서울은 인민군 수중에 들어갔다. 행주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도강한 후 김포 공군기지 전투에서 중대장을 잃었다. 구로동 방어전에선 친구를 보내고 충북 진천에선 인민군의 직사포 공세에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포항 방어선에 투입돼 인민군 5사단, 7사단을 기습해 궤 멸시키는 기쁨을 맛본 후 인천상륙작전으로 동부전선을 따라 북진했다. “38선을 누가 빨리 넘느냐로 각 사단마다 경쟁이 대단했어. 구보하다시피 이동했는데 연대장이 ‘여기가 38선이다’ 그래. 눈물이 안나면 거짓말이겠지. 우리가 1착으로 도착해 전 부대원이 화랑 무공훈장을 받았어.”
원산, 함흥을 점령하고 김일성 추적부대로 장진까지 진군하다 미해병사단과 교대하며 진로를 바꿨다. 열차로 청진을 거쳐 두만강이 있는 무산까지 올라갔다 중공군의 투입으로 배를 타고 부산으로 남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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