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 종군기자 잭 에덴씨
▶ 52-53년 성조지서 활동
“미국과 UN이 한국전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민주화된 한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1952년 6월부터 1953년 6월까지 미 보병 2사단 소속으로 1년 동안 미군부대 일간지인 성조지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한 잭 에덴(74세·사진)씨는 “미국과 UN의 한국전 참전은 민주화된 한국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51년 뉴욕에서 징집돼 켄터키의 포트 낙스 군부대에서 16주 기본훈련을 받은 에덴 씨는 캘리포니아,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52년 4월 부활절 인천을 통해 한국전에 투입됐다.
처음 그가 간 곳은 전방이 아니라 포로 수용소가 있는 거제도의 76 수용소 캠프.
2개월 후에는 종군기자로 명을 받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철원 일대의 각종 이름 모를 고지를 취재했다.
에덴 씨는 “당시 징집돼 한국전에 참가한 이들은 현재 70대 중·후반으로 그 많은 고지 전투를 잊지 못할 것”이라며 “한국은 수많은 산이 있어 아군과 적군은 서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힘든 전투를 치렀다”고 회상했다.
한국전 이후 한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에덴씨는 당시 자신이 취재한 이 고지들이 “현재 북한에 속하는지 한국에 속하는지 알고 싶다”고 궁금해했다.
그는 “중공군이 북한군 보다 훨씬 훈련이 잘됐으며 공격적이었다”면서 “52년 당시 미군이 고지전투를 벌인 상대는 주로 중공군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는 이미 통일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52년 여름부터 53년 봄까지 미해병 1사단, 기갑부대, 포대, 보병 2사단을 따라 다니면서 한국의 사계절을 경험한 에덴씨는 “한국의 겨울날씨는 지옥이었지만 이런 날씨 덕분에 겨울에는 비교적 전투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취재한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가 52년 11월 대선 승리 후 비밀리에 3일 동안 한국을 방문, 군 장병들을 위로한 것.
에덴씨는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는 전방과 함께 서울을 둘러보고 일본을 거쳐 귀국했다”고 말했다.
현재도 당시 찍은 사진 20여장을 보며 한국전을 회고한다는 에덴씨는 1982-1986년 워싱턴 타임스, 1986-1996년 워싱턴 포스트, 1977-2001년 WTOP 라디오 방송국에서 근무했다. 현재 메릴랜드 포토맥에 거주하면서 인터넷상으로 정원가꾸기 사업을 하고 있다.
<이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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