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중국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어느 지방의 관리로 임명을 받아 부임하여, 그 지방에 상총선사(常總禪師)라는 유명한 스님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겨뤄 보기로 하였다. 상총선사를 찾아간 소동파는 자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나는 칭(秤)가라 하오.
칭(秤 : 저울 칭)가라는 성은 들어본 적이 없는 상총선사가,
칭가라니요?
하고 물어 보자, 소동파는,
사람이 몇 근이나 되는지 달아보는 칭(秤)가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상총선사는,
악!
하고 벽력같이 할(喝)을 하고,
이것이 몇 근이나 되는지 일러 보라!
고 호통을 쳤다.
갑작스런 할과 호통에 정신이 아찔해진 소동파는 그만 상총선사에게 무릎을 꿇고,
이 어리석은 중생을 위하여 법(法: 진리)을 설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자, 상총선사는,
유정설법(有情說法)을 들어서 무엇하겠는가?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을 줄 알아야 하느니라.
하고 말했다.
유정설법이란 말로 하는 설법을 말하며 무정설법은 말로 할 수 없는 설법이다. 무정설법을 알 수가 없는 소동파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말을 타고 산을 내려오다가 폭포수 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쏴’하는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에 소동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정설법을 들은 것이다. 환희에 넘친 소동파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계곡물 소리가 곧 부처님의 장광설이요,
산 빛이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겠는가.
밤새 들은 팔만사천법문을
뒷 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들려줄까?
溪聲便是長廣舌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고전 강의를 하다보면 남을 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질문을 하여도 강의 내용이나 고전의 내용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질문을 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주 한다. 즉 ‘누구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 ‘누구의 어떤 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는 따위이다.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남의 목장의 소를 센다’는 말은 그런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상총선사처럼 할을 해주고 싶지만, 소동파 정도의 근기라도 되어야 할이 먹히지 그럴 위인도 못되니, 참으로 답답하다. 그런 사람일수록 여기 저기 열심히 기웃거리고서는 누구는 어떻고 어떻더라고 평을 하고 다닌다. 또 다른데 가서는 나에 대해서도 물어 볼게 뻔하다. 남들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
그런 사람은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데, 몸소 운동은 하지 않고 이 도장 저 도장 살피고만 다니고 교본만을 구해 열심히 보고는 정작 운동은 하지 않는 사람과 같다. 환자가 의사를 못 믿으면 병을 고칠 수 없다. 못 믿을 의사에게는 애초에 가지 말아야 하지만, 일단 진찰을 맡겼으면 믿고 처방에 따라야 한다. 병은 점점 깊어만 가는데 이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처방전만 비교하고 다녀서 어쩌자는 건가?
법문과 설교를 듣고 경전을 공부하면서도, 그 가르침대로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실천하고 수행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여기저기서 얻어듣거나 책을 읽고서는 아는 체나 하며 남을 평가하고 다니는 것이 도대체 자기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죽음이 언제 코앞에 닥칠지 모른다. 생사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지혜가 담긴 것이 옛 성인들의 가르침이요, 그 핵심은 ‘자기 자신을 살피라’는 것이다. 이제 그만 남에게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쉬고, 잠시라도 조용히 좌정하고 앉아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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