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에 접어드니 각종 호박 페스티발이 열리고 호박파이 먹기 대회, 호박 야외시장, 그리고 대형 마켓에는 호박더미가 쌓이고 뛰노는 어린애들 손에는 호박 모형의 장난감, 집 앞 뜰에는 호박 모형의 장식물이 설치되기도 하여 호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물론 핼로윈 밤에는 갖가지 형상을 새긴 호박들이 촛불을 밝히고 집문 앞에 놓여지면 그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핼로윈의 호박장식을 눈으로 보고 느끼는 그 감명은 우리 마음에 와 닿는 여운이 없이 그저 서양 풍속의 일면을 보는 기분이지만 이와는 달리 그 호박을 보면서 먹거리를 생각하면 피부로 느끼는 향수와 그 맛에 젖은 애틋한 정서가 서려있다.
우리는 호박잎을 쪄서 쌈을 싸서 먹고 또 국을 끓여 먹고 살아왔다. 야들야들한 풋호박 나물은 우리 밥상에 봄부터 여름 내내 떠날 줄 모르고 올랐으며 듬성듬성 썬 호박 조각은 된장국이나 찌개에 항상 단골로 들어가곤 하였다. 장마철에는 호박전을 부쳐 안방에는 군것질 사랑방에는 술안주로 사랑을 받았다.
늦가을에 누렇게 있은 큰 호박 덩어리는 호박죽이 제격이고 겨울에는 그 호박으로 시루떡을 쪄 먹었다. 지금도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큰 시루에 잘 익은 호박 시루떡을 생각하면 입에 군침이 돈다.
이렇게 호박은 봄부터 겨울까지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것은 호박 넝쿨은 하도 생명력이 강해서 잡초 속이나 산비탈 밭둑이나 어디든지 심어 놓으면 잘 자라고 엄청나게 많이 열리기 때문에 따먹고 돌아서면 또 열리고 또 열려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호박은 많이 열리고 늦가을까지 두면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커진다. 그러므로 웬만한 시골집 광에는 호박이 그득히 쌓인다. 이렇게 풍성하게 걷어들인 호박은 1950년대 식량난으로 허덕일 때 우리들에게 호박죽으로 끼니를 연명해준 사실을 잊을 수 없다. 호박죽은 그 맛이 좋다. 그리고 소화가 잘 된다. 자연 건강식이니 성인병에 좋다. 한번쯤 끓여 먹어 봄직한 먹거리다. 그리고 애틋한 향수도 느낄 수 있다.
이번 핼로윈에는 이러한 호박죽을 한 솥 끓여서 온 식구 한 그릇씩 배불리 먹고 가족 건강도 지키고 지난날의 어려웠던 시절 추억도 되새겨 보는 것도 뜻이 있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먹거리에 우리는 특별한 향수를 갖고 있다.
동지 날에 팥죽 먹기, 정월 대보름날 잡곡밥 먹기 등 나름대로 우리 고유의 문화가 깃들여 있다. 잊지 말고 이런 전통과 향수를 후손들에게 전수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고 이어가는데 힘써야 될 줄 안다.
제봉주/ 아케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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